교구 그룹웨어
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까리따스 정신: ‘너를 먼저’ (교구사회복지 신년교례회 미사 강론)
   2020/01/13  11:51

교구사회복지 신년교례회 미사

 

2020. 01. 11. 교육원 대강당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0년 새해를 맞이하여 교구 사회복지를 위해 헌신해 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지난 2019년은 ‘기해년’으로서 ‘황금돼지해’였습니다. 올해는 ‘경자년庚子年’으로서 ‘흰 쥐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황금 돼지나 흰 쥐나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고 복 많이 받기를 바라고 기도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만을 믿고 그분의 뜻을 열심히 실천하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새해가 되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데, 지난해나 지금이나 나라 안팎이 참으로 혼란스럽고 어지러워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시계제로’라고 하지요. 최근 남북관계나 국제정세나 국내 상황도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빛으로 오신 주님을 믿고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최근에 저는 교황님에 관한 영화 두 편을 봤습니다.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Pope Francis, A Man of His Word)’이라는 다큐 영화이고 또 하나는 ‘두 교황(The Two Popes)’이라는 영화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란 영화는 감독(빔 벤더스)이 교황님을 인터뷰한 것인데 오늘날 세상의 수많은 문제들, 즉 빈부격차, 가난, 전쟁, 난민, 노동, 생태환경 등에 관하여 교황님의 생각들을 잘 나타내는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의 마지막에 교황님은 미소와 유머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교황’은 현재 살아계시는 두 분의 교황님에 관한 영화입니다. 아시다시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교구장이셨던 베르골리오 추기경께서 2013년 3월에 있었던 교황선거(conclave)에 참석했다가 뜻밖에 교황으로 선출되는데, 교황님이 되시고 외부 첫 방문지가 어딘 줄 아십니까?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에 있는 람페두사(Lampedusa)라는 섬입니다. 왜 그곳을 제일 먼저 방문하셨는가 하면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난민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고 영화에도 나옵니다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바로 옆에 앉았던 추기경께서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합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을 늘 유지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이사야 42,1.3)

이런 나라, 이런 시대가 하루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교구는 2020년 올해를 ‘치유의 해’로 살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 교구민들이 대내외적으로 입은 상처에 대해 예수님께서 치유의 은혜를 내려주시고 성모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 치유를 위해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가톨릭 신자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가 되고 선물이 되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념하고 우리가 예전에 받은 세례를 기억하면서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축일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세례를 받았지요? 세례성사는 엄청난 하느님의 은총을 입는 것입니다. 먼저 세례로 죄를 씻고 성령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내가 머물 자리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이 엄청난 하느님의 은총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마태 3,13-17)을 보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요르단 강으로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이런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까리따스 정신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인간인 세례자 요한 앞에 머리를 숙이고 강에 들어가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은 까리따스의 정신으로 살아가려는 우리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해 11월 27일에 이 자리에서 교구 사회복지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그 당시 쌀쌀했던 날씨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유익한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그날 신홍업 관장님이 우리 교구 사회복지에 있어서 큰 업적을 남기신 다섯 분에 대하여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 다섯 분은 양수산나 씨, 엠마 씨, 옥잉애 씨, 그리고 김동한 신부님과 박병기 신부님이십니다. 이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교구 사회복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날 발표 교수님 한 분이 가수 폴킴(Paul Kim)의 노래 가사를 예로 들면서 까리따스 정신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노래 가사는 “너를 만나 참 행복했어. 나를 만나 너도 행복하니?”입니다. ‘나는 너를 만나 행복한데, 너도 나를 만나 행복하니?’라는 말입니다. 나도 행복해야 되겠지만 너야말로 나로 인해 행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노래에 대해서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제목이 ‘너를 만나’였는데 작년 한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이 되었던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그 노래 영어 제목이 ‘Me After You’ 이었습니다. ‘당신 뒤에 내가 있다’, ‘당신 먼저.’라는 말인데, ‘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너를 먼저 내세우고 너를 밀어주고 너를 지켜준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정신이 까리따스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달리 말하면,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이 완성되어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이란 것은 우리 모두가 구원을 받아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나중에 하느님을 만나서 그분 앞에 부끄러움 없이 제대로 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작년이 시인 구상 선생님 탄생 100주년이었습니다. 그분의 시 ‘새해’라는 시를 끝으로 묵상하겠습니다.

 

“새해 새 아침이

따로 있다더냐?

신비의 샘인 나날을

네 스스로가 더렵혀서

연탄 빛 폐수를 만들 뿐이지.

어디 헌 날,

낡은 시간이 있다더냐?

네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 아침을 새 아침으로

맞을 수가 없고

결코 새 날을 새 날로

맞을 수가 없고

너의 마음 안의 천진天眞을

꽃 피워야

비로소 새해를 새해로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