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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광야에 선 인간, 생명의 길이신 주님 (사순 제3주일 미사 강론)
   2020/03/14  15:30

사순 제3주일 미사

 

2020. 03. 15. 꾸르실료 교육관 경당

 

찬미예수님! 잘 계시지요? 

오늘은 ‘사순 제3주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교구가 지난 2월 20일부터 성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와 모임을 모두 중지하였는데 오늘로 4주째가 되는 것 같습니다. 미사와 모임만 중지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소한 일상들이 다 중지된 듯합니다. 더욱이나 지금은 모든 교우들이 판공성사를 보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함으로써 주님의 부활을 준비해야 하는 사순시기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들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퇴치를 위하여 지금 온 나라가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어 얼마 남지 않은 주님의 부활을 잘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몇 가지 느낀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사회에는 아직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입니다. 대구 경북이 어렵다고 하여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며칠 전에는 서울의 어린이 한 명이 자신의 용돈을 저금한 것을 모두 털어서 우리 대구가톨릭대학교 병원 의료진들에게 힘내시라는 손 편지와 함께 보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참으로 어렵고 귀한 일을 하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환자들을 정성으로 치료하시는 의료진들, 특히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하여 자신의 소임을 다하시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방역과 행정적인 뒷받침을 위해 불철주야로 일하시는 공무원 내지 관계자 여러분들에게도 새삼 큰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두 번째는 대구시민과 경북도민들의 의연한 모습입니다. 지난 2월 18일 31번 환자를 기점으로 시작하여 ‘코로나 19’가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지만, 생필품 사재기나 어떤 큰 혼란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구 경북을 폄하하는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말들이 있었습니다만 거기에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대구시민과 경북도민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그동안 귀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 사태를 겪으면서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마스크 한 장이 요즘 얼마나 귀하게 취급받습니까! 한 줌의 공기, 한 모금의 물, 한 그루의 나무가 얼마나 귀한지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은총과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겪어야 했던 광야생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욱 그런 느낌이 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척박한 광야에서 수많은 유혹과 시련과 고난을 겪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탈출 17,3-7)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말라, 모세에게 불평을 쏟아내고 있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를 모두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17,3)하고 백성들이 모세에게 대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느님께 여쭈었고 하느님의 지시로 지팡이로 바위를 쳤더니 물이 터져 나와 백성들이 그 물을 마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제1독서 바로 앞 장인 16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파 죽겠다고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탈출 16,3)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것이 만나와 메추라기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기도 하였지만 그때,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어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하였으며 의젓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장하여 갔던 것입니다. 지금 사순시기를 지내는 우리들도 이 시기를 희생과 보속의 기회로 슬기롭게 지냄으로써 더욱 단단한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요한 4,5-42)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가시는 중에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들리셨는데, 야곱의 우물가에서 어느 여인과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하고 그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거십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하고 질문합니다. 

성경에도 나오듯이,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원래 같은 민족이었지만 사마리아가 아시리아의 침공과 지배로 말미암아 고유한 전통과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여 상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한테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깊은 대화로 이끌며 그 여자에게 당신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십니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10)

“이 (우물)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13-14)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하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가 아직 당신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남편이 없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이 없다고 한 말은 맞는 말이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17-18)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그 여자는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화제를 예배 장소에 대한 문제로 돌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된 예배는 특정 장소나 건물, 혹은 특정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를 드릴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이며, ‘내가 바로 (너희들이 기다려온) 그 사람’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그 비밀스러운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신천지는 올해를 36년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교주 이만희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을 세운 지 올해로 36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시대가 끝나고 이만희의 시대, 새 언약의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만희 총회장이 예수님을 대신할 예언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교리에 얼마나 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넘어가는지요! 그것도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신천지에 빠져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튼 사마리아 여인은 이런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기 앞에 계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고 드디어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그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 여인은 자신의 잘못된 생활도 청산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진정 우리의 구세주요 우리의 주님으로 제대로 알며 믿고 따르고 있는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주님으로 입으로만 고백하고는 여전히 잘못되고 구태의연한 생활을 지속하고 있지 않은지요? 나의 우물, 나의 두레박을 포기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만을 따르며 장차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제2독서 로마 5,2)으로 가득 찬, 은혜로운 사순시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주님, 당신은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시니, 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주소서.”(오늘 복음 환호송)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