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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돌을 치워라.” (사순 제5주일 미사 강론)
   2020/03/28  15:16

사순 제5주일 미사

 

2020. 03. 29. 주교좌 계산성당

 

찬미예수님.

‘코로나 19’ 때문에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를 드리지 못한 지가 벌써 한 달하고도 1주일이 지난 것 같습니다. 많이 답답하시고 힘드시지요?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힘드신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3월 21일 아침에 매일신문에 난,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봄날(春望)’이라는 시를 읽다가 울컥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깨졌는데도 산천은 여전하여

봄이 돌아오자 푸나무가 무성하구나.

시절을 생각함에 꽃을 봐도 눈물 왈칵.

이별이 원통해서 새 노래도 마음 덜컥.

봉화가 석 달 동안 줄기차게 이어지니

집안 소식 만금 줘도 듣기가 쉽지 않네.

흰 머리 긁고 긁어 자꾸만 짧아지니

이제는 비녀마저도 도저히 못 꽂겠네.”

 

3월 20일 오후에 저는 경산 사동성당에 갔었습니다. 고열과 폐렴증세로 병원에 갔지만 어떤 영문인지 안타깝게도 며칠 만에 하늘나라로 떠나고 만 17세 소년 ‘세례자 요한’과 그 부모님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동성당 제대 앞에 소년의 사진을 두고 기도를 드리면서 울컥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날 저는 그분들에게 어떻게 위로를 해드려야 좋을지 적당한 말도, 방법도 찾지 못했습니다. 

두보의 ‘봄날’은 나라에 반란이 일어나 난리였지만, 지금의 봄날은 한낱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조금만 더 참고 이웃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기다리시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곧 다가오듯이 ‘코로나 19’가 물러가고 우리 모두가 다시 만나 부활의 기쁨을 함께 노래할 날이 곧 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 생을 살면서 좋은 일만 겪는 것이 아니라 안 좋은 일들도 많이 겪습니다. 여러 가지 시련과 환난이 따르기도 합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대구에 그렇게 많은 환자들이 생길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람이 겪는 일 가운데 가장 힘든 일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요한 11,1-45)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라자로의 여동생 마르타와 마리아는 예수님께 원망 섞인 말을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고는 결정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저희들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라자로의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는데, 무덤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는 무덤 입구를 막아놓은 “돌을 치워라.”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성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라자로의 이 부활 이야기는 단순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묵상하도록 이끈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돌을 치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 안에 있는 돌을 치워야 합니다. 우리 서로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나라 간에, 민족 간에, 종교 간에, 이웃 간에 얼마나 많은 벽을 세우고 돌을 쌓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돌을 치우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 간의 미움의 벽, 혐오와 증오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이 치유되고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은혜로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생태위기, 기후위기에 대해서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걱정을 하며 대책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이런 생태위기, 기후위기가 온 것도 사람들이 자연을 동반자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편리만을 생각하고 자연을 지배하고 개발하려고만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19’ 같은 신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하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자연을 그렇게 대하였기 때문이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반성과 성찰을 하면서 다가오는 부활절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죽음을 향한 행보를 시작하시기 바로 직전에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이은 부분, 즉 요한복음 11, 47-53을 보면, 대사제와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다시 살리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아무리 당신을 배척하고 죽이려는 흉계를 꾸미더라도 여전히 생명과 사랑의 길을 가십니다. 결국 그 길은 세상에서 먹히고 죽임을 당하는 길,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길은 죽기까지 당신을 내놓으시는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남은 살리시고 당신은 죽으시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부활의 길’이요 ‘생명의 길’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6)

마르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27)

 

사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살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