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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신 주님 (주님 수난 예식 강론)
   2020/04/11  10:54

주님 수난 예식

 

2020. 04. 10. 주님 수난 성금요일, 주교좌계산성당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숨을 거두는 가운데에 우리는 오늘 ‘주님 수난 성금요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짙은 어둠이 우리 광장과 길거리와 도시로 몰려들었고, 벙어리가 되어버린 침묵과 황폐한 허무가 우리의 삶을 사로잡아 버렸다.”고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온 세계가 주님과 함께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이번 사순시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주님의 수난을 더욱 깊이 묵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우리는 ‘주님 수난 예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이 예식 중에 특별히 이번 코로나 19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주님께서 우리를 풍랑의 회오리 속에 마냥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불쌍한 처지를 굽어보시고 우리를 구해주시도록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이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요한 18,1-19,42)’입니다. 4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수난을 비교적으로 자세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수난기를 읽을 때마다 인간의 죄가 얼마가 큰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사랑이 또한 얼마나 큰지를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복음서들은 공통적으로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배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위해 군대와 함께 예수님께서 계시는 동산에 들어 닥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낌새를 아시고 오히려 먼저 “누구를 찾느냐?”고 하시며 나서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요.”하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는 은전 서른 닢에 스승을 팔아넘겼다고 하지만 사실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다의 자기식의 잘못된 생각과 판단이 문제였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수많은 어려움과 오해와 미움과 증오와 원수맺음의 많은 부분이 이것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도 주님을 배반합니다. “당신도 저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요?”하고 대사제 집의 문지기 하녀가 묻는 말에 베드로는 “나는 아니오.”하고 대답합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실 때 ‘나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베드로는 ‘나는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스승과 제자가 이렇게 다르다니요! 허무할 뿐입니다. 

대사제와 수석 사제들, 그리고 바리사이들의 음모와 계략, 빌라도 총독의 무책임, 군중들의 그 맹목성 등은 이루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이게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드디어 마지막 말씀인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완성되었다는 승리의 외침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고발로 희생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끝까지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이 세상을 향하여 당신 자신을 내던지셨던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 억지 죽임을 당한 패배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에 확연히 보여준 승리자로서 예수님께서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은 이 세상의 반항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하겠다는 하느님의 의지의 승리인 것입니다. 

성금요일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이기 때문에 슬픈 날입니다. 그러나 성금요일을 영어로는 ‘Good Friday’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늘 성금요일에 돌아가심으로써 우리 인간을 죄와 죽음의 사슬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번에 코로나 19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셨습니다만, 이탈리아에서는 신부님들도 많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베르가모 교구의 베라르델리 신부님(72세)도 코로나 19에 확진이 되어 어느 병원에서 투병 중이었는데, 본당 신자들로부터 선물 받은 산소 호흡기를 낯선 젊은이에게 양보하고, 신부님은 결국 지난 3월 15일에 선종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자신은 기저질환이 있어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시고 자신의 호흡기를 그 젊은이에게 주어 당신은 돌아가시고 그 젊은이는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자가 격리를 하고 있던 그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베란다에 나와서 신부님의 관이 운구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큰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군사 하나가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더니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피는 예수님의 생명을 가리키고 물은 새로운 삶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생명 안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 새 생명의 공동체가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자기식으로 막다른 길로 가버린 유다가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와 하느님과 화해한 베드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교회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코로나 19가 기존의 우리 생활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교황님께서도 이 기회에 ‘회심으로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꿀 것’을 역설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번에 ‘한티 피정의 집’을 ‘생활치료센터’로 사용하도록 내어 놓았습니다. 그곳에는 코로나 19 확진자만 생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돕고 지원하는 많은 의료진과 공무원들도 생활하였습니다. 

그 중에 서울 성모병원에서 자원으로 오신 간호사 출신 수녀님이 한 분 계셨는데 어느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 지원팀은 2주간 봉사를 하면 대개 팀원들이 바뀌는데 수녀님은 한 달 내내 한티를 떠나지 않으시고 봉사를 계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한티 피정의 집 생활치료센터 사용기간이 지난 달 31일부로 끝났기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셔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생활치료센터가 지속되고 있는 경주로 가셨다고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수녀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죄 많은 이 세상이 망하지 않고 존속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새로운 삶이 이런 삶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봅시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야 5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