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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주님부활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강론)
   2020/04/12  19:46

주님부활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2020. 04. 11. 계산주교좌성당

 

“두려워하지 마라.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5-6)

 

교우 여러분들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보면 ‘축하’라는 말이 아직 어색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진정세에 들어간 것 같으나 코로나 19 사태는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마저도 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세계교회가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죽음이 가득한 세상에서 부활을 이야기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사순 시기를 보냈습니다. 머리에 재를 받지도 못한 채 사순 시기를 시작했고, 성당에서 공동체와 함께하는 미사를 드리지 못하고 영성체도 하지 못했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 사함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고, 속죄와 참회의 성가를 소리 높여 부르지도 못했습니다. 날마다 긴장된 마음으로 뉴스를 접하며, 항상 마스크를 끼고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경계하며 보낸 사순 시기였습니다.

 

우리 교구는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8일 까지 코로나 19 종식을 위하여, 그리고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9일기도를 전 교구민이 바쳤습니다. 다행히 9일기도가 끝난 그 다음날 대구에는 신규 확진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오늘 낮 질병관리본부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 밤 0시부로 신규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30명이며 대구 경북은 10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완전히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고 하며 질병관리본부와 정부 관계자들은 4월 19일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를 더 강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부활대축일까지 신자들과 함께 할 수 없어 교구장으로서 크나큰 아픔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교우 여러분들의 넓은 이해와 배려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 대구 경북 지역은 코로나 19 사태의 중심에서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질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과 의료진들, 그리고 담당 공무원들과 봉사자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교우 여러분들이 많이 참고 기다리면서 열심히 기도해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머지않아 여러분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 날이 곧 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세계 많은 나라가 코로나 19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3월 27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 예식을 거행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텅 빈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을 홀로 걸어가시는 교황님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온 인류의 아픔과 세계 교회를 걱정하시는 그분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우실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교황님과 전 세계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세상은 죽음의 세력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쟁과 테러 같은 범죄 행위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몰리고 있으며, 난민들은 열악한 수용 시설에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극빈층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심각한 영양 결핍에 시달리며, 깨끗한 물을 얻지 못해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있고, 아파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살인, 강도, 강간 같은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상의 숱한 범죄들도 사회의 약한 이들을 대상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외 계층들은 하루하루를 근근이 연명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세력은 아직도 건재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세력이 승리한 듯 보이는 곳에서 ‘부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배반당하고 군중에게 온갖 모욕과 고통을 받으시다가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어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 죽음의 세력이 승리한 듯 보이는 절망의 끝에서 ‘부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하고 더 이상 희망도 없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새벽에 주님의 무덤을 보러 갔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의 끝에서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천사에게서 듣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5-6)

그리고 그 기쁜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러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납니다. “평안하냐?” 결코 평안할 수 없었던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물으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절망과 고통 속에서 밤새 두려움에 떨던 마리아에게 이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는 누구나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되리라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부활은 죽음의 세력 아래 신음하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이 되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 교구는 올해를 ‘치유의 해’로 보내고 있습니다. 병으로 신음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 모두는 간절히 치유되기를 원합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치유가 필요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환자들, 또한 다른 질병이나 사고로 다친 모든 이들에게 육체적인 치유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신적인 치유도 필요합니다. 코로나 19의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는 사람들의 정신을 병들게 합니다. 오랜 격리 생활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경기 침체와 불황은 서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 친교를 나누지 못하면서 사회 전체가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치유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영적인 치유도 필요합니다. 가장 복된 시기인 사순 시기와 파스카 성삼일, 부활 시기를 교우들은 홀로 보내야 했습니다. 성당에 가서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성찬례에도 참여하지 못하였으며, 교우들과 모여 기도와 친교의 모임을 갖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성사생활도 하지 못해 죄 사함의 은총도, 혼인의 축복도, 병자성사와 장례미사의 위로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교회 전체의 영적인 치유도 절실합니다.

‘치유의 해’를 보내며 특별히 치유자이신 예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구의 주보이신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하느님께 열심히 전구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만물이 새롭게 시작하는 부활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피는 봄이 왔듯이, 고통과 보속의 사순 시기가 지나고 부활의 기쁨이 찾아왔듯이,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하여 찬란하고 행복한 시기를 맞이할 것입니다. 어둡고 답답한 마음을 걷어내고 기쁘게 부활을 맞으며 희망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리며, 우리의 하루하루가 부활을 체험하는 삶이기를 기원합니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