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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고 실천하는 공동체 (부활 제2주일 미사 강론)
   2020/04/18  17:27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주일 미사

 

2020. 04. 19.

 

오늘은 ‘부활 제2주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리며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들에게 가득하시길 빕니다. 

 

교우 여러분들은 생애 처음으로 ‘주님부활대축일’에 성당이 아니라 집에서 유튜브나 TV로 미사에 참례하였거나 대송을 바쳤을 것입니다. 파스카 성야와 주님부활대축일에 성당에서 미사를 성대하게 드리고 난 후, 교우들이 함께 모여 부활 계란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며 같이 웃고 떠들며 주님의 부활을 축하해야 하는 날에 그러지 못하고 집에서 조용히 지내셔야 했으니, 기쁜 부활절이 아니라 쓸쓸한 부활절이 아니었나 생각하니 마음이 슬퍼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19 때문에 이런 부활절을 지내게 된 것도 하나의 큰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고 싶습니다. 

 

사실 아직도 코로나 19 때문에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이 어려운 것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신규 확진자는 현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많은 환자들이 병원이나 생활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업자가 급증하였고 생계가 막막한 분들도 더 많아졌을 것입니다. 

부활신앙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때에 더욱 나눔과 배려와 연대의 정신으로 함께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향유를 가지고 무덤으로 달려갔던 그 마음으로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부활절 담화에서 말씀하시길, “무관심과 이기심과 분열과 망각은 결코 이 시기에 우리가 듣고 싶은 단어들이 아니다.”고 하시면서 “이런 단어들을 영원히 추방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부활 제2주일은 곧 ‘하느님의 자비주일’이기도 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2000년 4월 30일, 부활 제2주일을 맞이하여 폴란드의 마리아 파우스티나(1905-1938) 수녀를 시성하면서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따라 교회는 그 이듬해부터 매년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청하는 날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인 베드로 1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1,3-4)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주일’을 맞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자비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큰 어려움과 위기에 처해있는 우리나라와 세계를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간곡히 청해야 하겠습니다. 

 

부활 제2주일에는 늘 요한복음 20,19-31을 읽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예수님과 열두 사도가 아니라 예수님과 토마스 사도입니다.  

‘주간 첫날 저녁’,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모두 문을 잠가 놓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여 주었지만, 제자들은 아직 그분을 직접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워 숨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오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자들은 엉겁결에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토마스 사도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토마스가 돌아왔을 때 다른 제자들이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했지만 토마스는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만져보고 창 자국이 있는 옆구리에 직접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토마스는 의심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토마스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만큼 믿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약하고 부족하고 휘청거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끈기가 곧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이성과 경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우리의 의지와 기도와 성령의 이끄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22)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이끄심이 없이는 예수가 주님이시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더 굳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드레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자신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대보지도 않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8)하고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29)

그래서 오늘 제2독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베드로 1서 1,8-9)

베드로 1서의 이 말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 그분을 믿고 있으며 그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한 우리 영혼의 구원을 믿고 있기에 우리 모두는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리 11,1)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토마스는 언젠가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에게 가자고 하셨을 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11,26)고 말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과오가 있습니다. 그는 동료 사도들을 떠나 혼자 떨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크게 상심하고 절망에 빠져 혼자 밖을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8일 전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교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교회 안에서 친교를 나누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역사하심은 대부분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활시기 동안에 우리는 미사 중에 제1독서로 ‘사도행전’을 읽게 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인 사도행전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도들의 기록입니다.

오늘 우리가 제1독서로 읽은 부분은 초대교회 신자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참으로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6-47) 

우리 공동체의 모습도 바로 이러해야 할 것이다. 

 

믿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가 오늘날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함으로써 주님 부활의 참된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 주님, 당신의 자비가 제 위에 머무르게 하여 주소서. 오 저의 예수님, 저를 당신 자신으로 변화시켜 주소서.”(성녀 파우스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