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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거룩하고 사랑 충만하며 행복한 사제 (사제성화의 날 미사 강론)
   2020/06/22  15:20

사제성화의 날 미사

 

2020. 06. 19.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대축일, 범어대성당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대축일’이며 ‘사제성화의 날’입니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의 이 와중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우리 신부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특강을 듣고 자신과 모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미사 중에 특별히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신 손상오 루카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11년 전에 돌아가신 최영수 요한 대주교님께서도 손상오 신부님과 서품동기이시니, 살아계셨으면 오늘 같이 금경축을 맞이하시게 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손상오 신부님께서는 사제로서 지난 50년 동안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곳곳하게 모범적으로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6년 전 사제성화의 날 미사 때 손 신부님께 후배 사제들을 위해 한 말씀 해달라고 청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신부님께서는 사제는 공동체의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사제 직무로서 해야만 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며, 현실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는 사제로서 해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신 것이 기억납니다.

신부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직무와 소명을 가장 우선적으로 잘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제단 중에서 작년에 이찬현 야고보 신부님 한 분만 돌아가셨는데, 올해는 벌써 세 분이 하느님께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2월 12일에 최시동 요한 신부님께서 돌아가셨고, 4월 12에는 이수승 베드로 신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에는 우리 교구에서 연세로나 서품으로나 1번이셨던 최봉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것은 이수승 베드로 신부의 선종이었습니다. 그날이 부활절 오후였는데 밖에서 점심을 드시고 사제관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심근경색으로 만 46세의 나이에 돌아가셨으니 모두가 놀랐고 안타까워하고 애통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수승 신부님의 선종 며칠 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5대리구청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이수승 신부님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이 신부님에 대한 이런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텔레비전에서 어떤 앵커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이수승 신부님이 실을 잘랐는데 환한 빛이 갑자기 비치더니 앞의 전광판에 74점이라는 점수가 뜨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74점이라는 점수가 잘 받은 점수냐고 물었더니 잘 받은 점수라고 하면서 이수승 신부님의 헤어스타일이 베드로 성인과 닮았기 때문에 가산점이 붙은 점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직원은 이수승 신부님이 바로 천국에 갔음을 직감했고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지난 2월 18일에 있었던 교구 사제연수 때 점심을 먹으면서 5대리구 사목국장 이영재 바오로 신부님이 들려주었습니다. 이영재 신부님 자신도 그 직원의 꿈 이야기를 듣고 위로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는 이수승 신부님과 같은 그런 착한 영혼들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스개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과연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커트라인 점수가 얼마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수승 신부님이 가산점을 받아서 그 점수를 받았다면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산점이 과연 있기나 할까? 사제가 되었다고, 혹은 주교가 되었다고 가산점을 주시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저도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8월 4일 프랑스 아르스의 본당신부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의 선종 160주년을 맞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사제들에게 서한을 보내셨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이번에 교황청 성직자성에서 묵상자료를 만들어 보내왔는데 교구 공문으로 신부님들에게도 전달해 드렸습니다.

2009년에 비안네 신부님 선종 150주년을 맞이해서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 ‘사제의 해’를 선포하시고 1년 동안 ‘사제의 해’를 지내도록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해 우리 교구는 ‘거룩한 사제, 사랑 충만한 사제, 행복한 사제가 되자.’는 모토로 사제의 해를 살았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번에 성직자성에서 보내온 묵상자료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지 주제로 짜여있습니다. 그것은 ‘감사’와 ‘자비’와 ‘연민’과 ‘깨어있음’과 ‘용기’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그 서한에서 사제들에게 “기쁨으로 자기 삶을 봉헌한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교황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사제로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셨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기쁨으로,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여러 신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일전에 어떤 신부님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교님, 신부님들한테 잘못한다는 지적 말고, 잘한다는 칭찬을 자주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제가 보통 속으로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서 칭찬을 잘 하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못을 지적만 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런 말을 듣게 되니까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그 신부님의 말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사제들이 신자들에 대하여 자비의 마음과 연민의 마음을 가지기를 강조하셨습니다. 자비와 연민의 마음은 예수성심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어떤 신자를 만났는데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본당신부님한테는 우리 신자들을 사랑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그분의 눈에서 눈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좀 특별한 경우입니다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슬펐습니다. 본당 신자들을 사랑하지 않는 본당신부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 백 명 중의 한 분이라도 그렇게 느꼈다고 한다면, 신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께서 ‘깨어있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에, 교회에, 또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실망했을 때, 우리는 달콤한 슬픔에 젖어들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동방의 교부들은 이를 권태라고 불렀습니다.”

달콤한 슬픔, 권태, 무기력, 무력감, 타성에 젖음 등으로 말할 수 있는 이런 것들로부터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2월 중순경부터 두 달 반 동안 미사와 교회활동이 중단되었고 지난 5월 7일부터 미사를 재개하였지만, 미사 참석률이 대체로 50%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강 때문에 어르신들의 참석률이 가장 적을 줄 알았는데, 문제는 어르신들이 아니라 청소년들과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주일학교나 청년들 모임을 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예 미사에 나오지 않으니 코로나가 끝났다고 하더라고 과연 그들이 얼마나 교회에 나오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고민과 대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제들도 코로나로 인하여 달콤한 슬픔이나 권태나 무기력과 무력감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깨어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황님께서는 ‘용기 있는 마음을 지켜 나가려면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두 가지 유대, 즉 예수님과 이루는 유대와 신자들과 이루는 유대를 더욱 증진시키고 심화시켜 나가라.’고 권고하십니다.

먼저 예수님과의 유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한 가지 방법으로 ‘영적 동반을 등한시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전적인 신뢰와 열린 자세로 자신의 여정에 대하여 함께 대화하고 성찰하는 형제, 의논하고 식별하는 형제를 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런 형제, 그런 친구를 가졌습니까? 선배든, 후배든, 동료든 자신의 속 이야기까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어서 교황님께서는 신자들과의 관계를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양떼, 사제단, 그리고 여러분의 공동체와 떨어져 있지 마십시오. 폐쇄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집단에 갇혀 있어서는 더 더욱 안 됩니다. 이는 결국 영혼을 질식시키는 독이 됩니다. 용기 있는 교역자는 언제나 밖으로 나가는 교역자입니다.”

여기서 ‘밖으로 나가는 교역자’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양떼를 찾아나서는 교역자, 더 나아가 울타리 밖의 양들에게도 찾아가는 교역자, 세상 속에 야전병원을 세우고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는 교역자가 되라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김길수 교수님으로부터 특강도 들으셨는데 제가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대축일’과 ‘사제성화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예수성심을 닮은 ‘거룩한 사제,’ ‘사랑 충만한 사제,’ ‘행복한 사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자 분들은 우리 사제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드려 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