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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창조질서 안에서 농촌과 도시가 함께! (연중 제16주일, 농민주일 미사 강론)
   2020/07/22  11:11

연중 제16주일, 농민주일 미사

 

2020. 07. 19. 영천본당 자천공소

 

영천에 공소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교로서 정식으로 방문하여 미사를 드렸던 곳은 두 곳 밖에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령본당 소속의 화산공소와 금호본당 소속의 대창면 신광공소입니다. 이번에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영천본당 소속의 자천공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화북면 자천공소는 1927년에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천지역에 신앙의 씨앗이 뿌려져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15년 을해박해 때부터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구의 복자 20분 중에 을해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이 11분 됩니다. 그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영양 일월산과 청송 노래산 등지에서 교우촌을 이루고 살다가 1815년 을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붙잡혀 대구로 끌려와 심문과 재판을 받고 순교하셨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분이 성 김대건 신부님의 종조부이신 복자 김종한 안드레아입니다.

조선시대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너머와 문경, 봉화, 영양, 청송 등 산간지역에서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는데 경상도에도 다시 박해가 일어나니까 교우촌이 와해되고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영천 지역 곳곳에도 교우들이 살게 되고 그분들이 신앙의 씨앗이 되어 신자들이 생기고 공소가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영천지역에서도 화북면이 역사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자천공소가 설립되기 전에 질구지공소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질구지(현 화남면 금호동)에는 아직도 옛날 치명자의 후손들이 옹기를 구웠던 옹기굴이 남아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용평본당의 제2대 주임인 유홍모 안드레아 신부님 때 노경옥(가밀로)이라는 독실한 교우가 대구에서 자천으로 이주해 오면서 1927년에 공소를 자천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42년 5월에 최재선 요한 신부님(1957년 초대 부산교구장 주교가 되심)이 부임하시면서 한 때 본당으로 승격되기도 하였으나, 3개월 후 최재선 신부님이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 간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어 대구 계산성당 보좌신부로 가는 바람에 다시 공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도 일본 경찰은 공소를 폐쇄하고 종을 헌납하라고 압력을 가했으나 이윤영 바오로 회장님을 비롯한 교우 여러분들이 합세하여 끝까지 공소를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85년 영천본당 김상규 신부님 시절에 자천공소 건물이 오래되어 새 건물을 지었는데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질구지 공소로 시작하면 역사가 200년이 다 되어 갑니다만, 그동안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셨던 신부님들과 여러 회장님들과 교우 여러분들을 기억하며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농민주일’입니다. 한국천주교회는 해마다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구는 그동안 교구 차원에서 농민주일을 잘 지내지 않았습니다. 일부 본당과 몇몇 대리구 차원에서 행사를 하기는 하였습니다만,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올해부터는 주교들이 찾아가서 미사를 드리고 공소 신자들을 만나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곳 자천공소를 방문하였고, 장신호 주교님은 군위군 부계공소를 방문하셨습니다.

교회가 농민주일을 지내는 이유는 농민들의 수고를 기억하면서 농촌과 도시가 함께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맞게 살도록 하자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땅을 잘 가꾸고 잘 지켜서 우리들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 잘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생명의 가치, 자연 생태의 가치를 살리고 지속 가능하고 더욱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농민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시는 일에 긍지와 소중함을 가지시고 더욱 기쁘고 보람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공소 출신이며 농부의 아들입니다. 제 고향은 달성군 옥포면 강림2동인데 동네 어귀에 ‘강림공소’라는 공소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늘 부모님을 따라 그 공소에 다녔습니다. 일제 강점기 어느 때부터 외할아버님이 초대 공소회장을 하셨는데, 해방 후 한 때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호열자, 즉 콜레라 때문에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저희 아버님께서 공소회장을 이어받아서 1988년 논공본당이 설립될 때까지 40여 년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마다 형들과 동생들과 함께 공소에 가서 아버님이 이끄시는 공소예절에 참여했으며 아버님의 강론을 들으며 자랐던 것입니다.

우리 집은 농사가 많았습니다. 자식 농사도 많이 지어서 우리 부모님은 자식을 5남 5녀를 낳으셨는데 제가 여덟 번째입니다. 농사는 주로 논농사였지만 사과 과수원도 하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년 내내 바빴습니다.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이 되면 학교 다니던 자식들도 일찍 나와서 거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바쁜 농사철이라도 온 식구가 큰방에 모여서 아침저녁으로 바치던 조과, 만과를 한 번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20년 전에 86세로 하느님 나라에 가셨고 어머님은 7년 전에 96세로 하느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러면서 농사가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하느님도 농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포도농사를 지으시는 농부에 비유하십니다.

오늘 복음(마태오 13,24-43)에서는 ‘밀과 가라지 비유’를 들려주고 계십니다. 농부가 자기 밭에 밀을 뿌렸지만 가라지도 자라는 것입니다. 벼논에 볍씨를 뿌렸는데 피도 함께 자라듯이 말입니다. 논에 벼와 피가 함께 자라고 밭에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듯이, 이 세상에,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선인과 악인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일꾼들이 가라지를 뽑으려고 하니까 주인이 추수 때까지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밀을 뽑을 수 있기 때문이고, 생물적으로는 가라지가 밀이 될 수는 없지만 이 비유 이야기가 뜻하는 또 하나의 의미는, 하느님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고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더욱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마태 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