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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신앙생활의 구심점, 성체성사 (주님 만찬 저녁미사 강론)
   2021/04/02  11:26

주님 만찬 저녁미사

 

2021. 04. 01. 대신학교

 

오늘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사제직을 세우시고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주교좌범어대성당에서 성유축성미사를 드렸으며, 그 자리에서 교구의 모든 신부님들이 예전에 사제품을 받았을 때 했던 서약을 다시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 앞에서 갱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이 되어서는 주님 만찬 저녁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여 사순시기는 오늘 낮으로 끝나고, 이 미사부터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3일 후 예수부활대축일로 끝나는 파스카 성삼일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기념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체험하는, 가장 거룩하고 뜻깊은 시간인 것입니다.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되는 오늘 저녁을 ‘주님 만찬 성목요일’이라 하고, 주님만찬미사를 봉헌하며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것을 기념하고,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 제1독서인 탈출기 12,1-8.11-14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마다 지켜야 했던 파스카 음식, 즉 파스카 만찬에 대한 규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독서로 읽은 코린토 1서 11,23-26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가졌던 최후만찬, 즉 예수님의 파스카 만찬에 대하여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역사적인 현장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준다.’고 하면서 그날 저녁에 있었던 상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은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3-25)

그 당시 바오로 사도도 예수님을 기억하고 기념할 때마다 성찬식을 거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미사성제를 통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고 이 예를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들에게 남기신 위대한 사랑의 증표가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그냥 기념으로 남기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들의 양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 성체성사는 정말 인간의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깊은 의미를 가진 신비입니다.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미사가 우리 신앙생활의 구심점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미사를 조금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임 교황이신 베네딕도 16세께서 성체성사에 관하여 ‘사랑의 성사’라는 권고를 발표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은 제1부 ‘성찬례, 믿어야 할 신비’, 제2부 ‘성찬례, 거행하여야 할 신비’, 제3부 ‘성찬례, 살아야 할 신비’로 되어있습니다.

이 거룩한 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써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고, 성체성사는 믿어야 할 신비이며, 거행하여야 할 신비이고, 우리가 살아야 할 신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먹은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고 하셨는데, 단순히 성찬례를 거행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기억하고 그런 삶을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13,1-15 말씀으로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장면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강론 후에는 통상 ‘발 씻김 예식’이 있는데, 오늘은 코로나19로 인해 생략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여기서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하는데, 예전에 우리가 사용했던 공동번역 성서에는 ‘더욱 극진히 사랑하셨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뜻이라고 생각됩니다만, 하여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시간적으로는 죽기까지 사랑하셨고, 그리고 정도에 있어서는 더욱 극진히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난 뒤,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신 후, 손수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수건으로 일일이 닦아주셨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일은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베드로가 너무 황송하고 민망했든지 예수님께서 자기 발을 씻는 것을 거부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포함하여 열두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주셨던 것입니다.

사랑은 말이나 관념이나 생각이 아닙니다. 사랑은 허리를 굽히는 것이고, 남의 발을 씻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서로 생각과 뜻이 맞지 않아 다투게 되고, 그러다가 사랑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미움과 시기, 그리고 해코지까지 해대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다들 서로 잘났고, 최소한 이것만은 밑질 수 없다는 자존심 하나 때문에 물러설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덮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코로나19 못지않은 바이러스가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이 지구촌에 번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와 다른 이에 대한 편견과 차별과 증오와 혐오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차별범죄, 증오범죄, 혐오범죄가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더 나아가서 내전과 전쟁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회칙 ‘모든 형제들’을 발표하셨을 것입니다. 생각과 이념과 민족과 색깔과 종교를 넘어서 모든 사람을 형제로 여기고 존중하며 형제애로 대하는 일이 오늘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그리고 오늘 복음 환호송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 최후만찬을 마치시고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겟세마니에 가셔서 성부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병사들에게 체포되시고, 밤새 여기저기 끌려 다니시며 심문과 재판을 받으시고, 날이 새자 성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2000여 년 전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새로운 계약, 신약의 파스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6)

 

지금 이 시간부터 우리는 부활의 빛이 밝아올 때까지 파스카 성삼일 동안 주님의 죽으심을 조용히 묵상하면서 거룩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지내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