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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주님부활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강론)
   2021/04/08  12:4

주님부활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2021. 04. 03. 성김대건성당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과 이 본당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리시는 평화가 우리나라와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금 일 년 중에서 가장 ‘거룩한 밤’을 맞이하였으며, 그래서 가장 성대한 전례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전례는 4부로 진행되는데, 제1부 ‘성야의 장엄한 시작, 빛의 예식’, 제2부 ‘말씀의 전례’, 제3부 ‘세례 전례’, 제4부 ‘성찬 전례’가 그것입니다.

보통 미사에서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 전례만 있는데, 오늘 밤에는 말씀의 전례 앞에 ‘빛의 예식’이 있고 ‘파스카 찬송’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찬 전례 전에 ‘세례 전례’가 있습니다. 예부터 본래 세례식은 부활 밤에 했었는데, 예식이 너무 길어지니까 본당에 따라 다른 날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례식이 없어도 ‘세례서약 갱신예식’을 파스카 성야에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밤 말씀의 전례에서 읽어야 하는 성경말씀이 구약의 창세기부터 신약의 복음서까지 총 9개입니다.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오늘 밤 몇 개의 독서와 기도로써 간략하게나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밤을 전에는 ‘부활 성야’라고 하였습니다만, 몇 년 전부터는 ‘파스카 성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 성목요일 저녁부터 부활대축일까지를 전에는 그냥 ‘성삼일’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파스카 성삼일’이라고 합니다. 파스카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파스카’는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였습니다. 오늘 제3독서로 읽은 탈출기 14,15-15,1 말씀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구약의 일곱 개의 독서 중에서 이 독서는 결코 생략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인도로 이루어진 이 사건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해마다 니산달 14일이 되면 파스카 축제를 벌였던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이 파스카 축제 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파스카(Pascha)’라는 말은 ‘건너가다’, ‘지나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성목요일 저녁 만찬미사 때 읽었던 요한복음 13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요한 13,1)

예수님께서 오늘 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18항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특별히 당신의 파스카 신비로 인류를 구원하시고, 하느님을 완전하게 현양하는 업적을 이루셨다. 곧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죽음을 없애시고 당신의 부활로 우리 생명을 되찾아 주셨다.”

그리고 오늘 읽은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로마 6,3.5)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고, 또한 마지막 날 부활 때에도 그분과 함께 다시 살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런 부활의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삶이 힘들고 고달파도 힘을 내고 살아가는 우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년 2월부터 1년이 넘도록 코로나19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만의 사정은 아닙니다만, 불편한 것을 넘어서 코로나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생계가 어려워 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남북관계는 풀리지 않고, 선거를 앞두고 여와 야는 서로 헐뜯기가 바쁩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갑갑합니다.

나라 밖에서는 미얀마 사태가 심각하고, 미국을 비롯하여 여기저기에서 증오범죄, 차별범죄가 심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에 드리워진 이러한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최근에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회칙 <모든 형제들>을 발표하셨던 것입니다.

4월호 <빛> 잡지에 우리 교구 홍보국장 최성준 신부님이 ‘미얀마 땅에도 부활이 오기를’ 이라는 글을 ‘여는 글’로 실은 것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국의 진나라의 진시황과 한나라의 고조 유방을 비교해 놓은 글입니다.

진시황이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자신의 이름을 첫 번째 황제라고 하여 ‘진시황(秦始皇)’이라 짓고 나라를 다스렸지만, 통일제국 진나라는 15년이라는 짧은 기간만 유지되다가 멸망하였습니다. 황제가 된 후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 세계 곳곳에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보냈지만 시황제는 10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죽었습니다. 그 때 시황제의 나이는 51세였습니다.

그리고 진나라는 시황제가 죽고 불과 4년 만에 한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그렇게 빨리 멸망한 것은 가혹한 통치를 이어갔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나라는 400년을 넘게 이어갔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한자, 한문, 한지, 한학이라는 것이 이 때 형성이 되었고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민족의 이름도 한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폭력으로 이루어진 권력은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당시 유다인 지도자들과 로마 총독 빌라도의 폭력에 의해 죽음을 맞으셨지만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하셨습니다.

 

어둠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밤이 새면 새벽이 밝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마르코 16,1-7)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여인들이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3)하고 걱정하면서 무덤으로 달려갔더니 그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새벽빛은 밝아 오는 것입니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추운 겨울 바람을 이기고 꽃이 피어나고 마른 나뭇가지에서 잎사귀가 돋아나듯이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기 위해 무덤으로 갔지만 무덤은 비어있었고, 대신 웬 젊은이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마르 16,6)

그러면서 그 젊은이는 이어서 ‘너희들이 제자들에게 가서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마르 16,7)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갈릴래아’가 어디입니까?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이라는 동네가 있는 지방이고, 큰 호수가 있어서 생명이 넘쳐나는 지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제자들도 그 지방 출신이었습니다. 예루살렘 대도시 사람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을 촌뜨기라고 무시하였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갈릴래아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신 것은, ‘우리 거기에서 다시 시작하자’,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갈릴래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번 뵙게 되고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힘을 얻어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오늘의 이 교회가 있고 우리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올해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입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성김대건성당이 희년 동안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순례지이기도 합니다. 이번 희년의 주제가 ‘당신은 천주교인이요?’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주교인입니까? 묵주반지 끼고 묵주기도 열심히 바치는 사람이 천주교인입니까? 천주교인이 아니고서야 묵주기도를 바치지 않겠지만 참된 천주교인은 주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의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들도 마리아 막달레나와 주님의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하며, 세상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힘을 받아 새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