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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땅에 은총과 사랑의 자취를 남깁시다 (교구설정 110주년 기념미사 강론)
   2021/04/12  10:4

교구 설정 110주년 기념미사

 

2021. 04. 08. 성모당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들에게 가득 내리시길 빕니다.

오늘은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부활절과 성탄절이 워낙 큰 축일이기 때문에 팔일 동안 축제를 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8일 동안 매일 미사 때 대영광송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교구로서는 무엇보다도 ‘교구 설정 110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다시 말해서 110년 전 오늘 ‘대구교구’가 설정된 것입니다. 그 전에는 우리나라에 ‘조선대목구’라는 교구 하나만 있었는데, 1911년 4월 8일에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대구대목구’가 설정됨으로써 조선대목구가 ‘서울대목구’와 ‘대구대목구’로 분할되었던 것입니다.

10년 전에 우리 교구는 ‘교구설정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여러 행사와 사업들을 실행하였습니다. 바로 10년 전 오늘 교구청 정원에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회장님의 동상을 세워 제막하였고, 그 날 저녁에는 계산주교좌성당에서 ‘제2차 교구 시노드’를 개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 5월 15일에는 대구 시민운동장에서 ‘교구 설정 100주년 기념 감사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교구 100년사’를 편찬하였으며, 2016년에는 ‘교구 100주년 기념 범어대성당’을 지어 봉헌하였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110년 전에 우리 교구 초대 주교님으로 파리외방전교회의 안세화 플로리안 드망즈 주교님이 임명되셨습니다.

‘드망즈 주교 일기’를 보면 드망즈 주교님께서 이 사실을 처음 안 것이 1911년 4월 23일 ‘사백주일’ 날이었습니다. 그 날이 주일인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 드망즈 신부님은 사장으로 계시던 경향신문 사무실에 출근하여 편집 일을 보고 있었는데, 뮈텔 주교님이 들어오셔서 축하를 하시면서 대구대목구장 임명 소식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드망즈 주교님은 1911년 6월 11일에 명동성당에서 주교로 서품을 받으셨고, 6월 26일 월요일에 대구로 부임하셨습니다.

주교님 일기의 본문은 대구로 부임하신 이 날부터 시작합니다. 아침 일찍 급행열차 편으로 서울을 출발하여 대구에 오후 3시 45분에 도착하셨는데, 역 광장에는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고, 성당까지의 행렬은 엄청났으나 질서정연했으며, 성당으로 가는 길 전체가 장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성당이라 하는 것은 ‘대구성당’을 말하며 지금의 ‘계산주교좌성당’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대구시내에는 ‘대구성당’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110년 전에 이렇게 대구에서 첫발을 내딛은 안세화 주교님께서는 열악한 교구 재정을 ‘루르드 성모님’의 보호와 관리에 맡기시고, 1938년 2월 9일에 선종하실 때까지 27년 간 우리 교구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2대 대목구장으로 파리외방전교회의 문제만 제르망 무세 주교님이 임명되셨습니다. 문 주교님께서는 1938년 12월부터 1942년 8월까지 우리 교구를 약 3년 8개월 간 사목하셨습니다.

제3대 대목구장은 일본인인 하야사카 이레네오 주교님이 임명되셨습니다. 하야사카 주교님은 1942년 8월부터 1946년 1월 선종하실 때까지 우리 교구를 약 3년 4개월 간 사목하셨습니다.

그리고 제4대 대목구장으로 주재용 바오로 신부님이 임명되셨는데 1946년 1월부터 1948년 5월까지 약 2년 5개월 간 사목하셨습니다.

그 다음으로 서울대목구의 노기남 바오로 주교님께서 제5대 대구대목구장으로 1948년 5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약 7개월 간 겸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6대 대목구장으로 최덕홍 요한 주교님께서 임명되셨습니다. 최덕홍 주교님께서는 1948년 12월부터 1954년 12월 선종하실 때까지 약 6년 간 우리 교구를 사목하셨습니다.

그 다음으로 제7대 대목구장으로 서정길 세례자 요한 주교님께서 1955년 7월에 임명되셨습니다. 그리고 성 요한 23세 교황님께서 1962년 3월 10일에 한국교회에 교계제도를 설정함으로써 서울, 대구, 광주가 관구가 되고 대교구로 승격됨에 따라 서정길 주교님은 대주교가 되셨으며, 1986년 7월까지 31년 동안 우리 교구를 사목하셨습니다.

그리고 제8대 교구장으로 1972년부터 우리 교구 보좌주교로 사목하시던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께서 1986년 7월에 착좌하시고 2007년 4월에 은퇴하실 때까지 교구장으로서 약 21년 간 교구를 사목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3월 14일에 하느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제9대 교구장으로 2000년 12월에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사목하시던 최영수 요한 대주교님께서 2007년 4월에 착좌하시고, 2009년 8월에 선종하실 때까지 교구장으로 약 2년 4개월 간 우리 교구를 사목하셨습니다.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 초대 주교님으로 27년 간 우리 교구의 기초를 잘 다져놓았습니다만, 2대부터 5대까지는 일제강점기 말과 해방 전후의 어려움 때문에 교구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6대 최덕홍 주교님부터 안정이 되었고 발전을 거듭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홉 분의 전임 교구장 중에서 세 분의 주교님 동상이 이 성모당에 있습니다. 초대 주교님이신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 상은 서정길 요한 대주교님께서 세우셨고, 6대 교구장 최덕홍 주교님 상과 7대 교구장 서정길 대주교님 상은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안세화 주교님은 우리 교구 초대 주교님이시고, 최덕홍 주교님은 우리 교구 출신으로 처음으로 주교가 되신 분이며, 서정길 대주교님은 우리 교구에서 최초로 대주교가 되신 분이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주교님들의 상을 다 세울 수는 없는 일이고, 장차 교구 역사관을 마련하게 되면 그곳에 교구 역사를 전시할 예정입니다.

 

오늘 우리 교구 설정 110주년을 맞이하여 전임 교구장 주교님들의 재임기간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살펴본 이유는 오늘의 우리 교구가 있게 된 데 있어서 이 분들의 수고와 헌신과 책임이 참으로 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임 교구장 주교님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와 교우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 교구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어떤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권한보다는 져야 할 책임이 더 많고, 해야 할 소명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있었습니다만,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든, 교회에서든 어떤 자리에 앉든지 그 권한과 책임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알고, 겸손하게 하느님을 섬기고 백성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24,35-48)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한테 나타나신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오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손과 발을 만져 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신 후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하시니 제자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그것을 잡수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복음서들은 마리아 막달레나만이 아니라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여러 번 만나 뵙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잘 믿지 못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여러 번 만나 뵙게 되니까 믿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 46-48)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 3,15에서도 베드로 사도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증인’은 어떤 사실을 본 사람이고 그 본 것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었고, 제자들의 제자들이 또한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구 역대 교구장 주교님들이 바로 그 증인들이었고,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또한 그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증인들의 증언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교회역사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증인들의 기록과 행적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교구 150주년, 200주년에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 땅에 <은총과 사랑의 자취>(교구 100년사 제목)를 남기는 데에 하나의 역할을 우리 모두가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루르드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이윤일 요한과 한국의 모든 성인들과 복자들이여,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