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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양들을 돌보아라 (부제 사제 서품미사 강론)
   2021/12/30  9:35

부제 사제 서품미사

 

2021. 12. 28. 범어대성당

 

먼저 주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우리의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들에게 가득하시길 빕니다.

특별히 오늘 이 미사 중에 부제로 서품되고, 또 사제로 서품될 이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큰 은총을 내려주시도록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동안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상의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요 하느님의 일꾼으로 살기 위해 신학교와 본당과 삶의 현장에서 학업과 성덕을 닦아 왔습니다. 이제 그 결실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오늘이 시작인 것입니다. 부제가 되고 사제가 되면 성직자의 신분을 가지고 성직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았던 삶보다 자신에게 새롭게 주어진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 21,15-17을 봉독하였습니다. 요한복음서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하십니다. 그때마다 시몬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왜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하셨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만,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으시는 동안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했던 베드로를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베드로로 하여금 당신에 대한 사랑 고백을 세 번이나 하게 함으로써 그의 아픈 기억과 상처를 치유하고 낫게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도 베드로보다 전혀 나을 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부족하고 잘난 것도 없고 오히려 잘못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사람으로 쓰시겠다고 부르시고 뽑으셨습니다.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배반했던 베드로에게 ‘네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하고 묻지 않으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만 물으시는 주님 앞에 베드로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매일 매번 주님께 사랑 고백을 해야 합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미사 때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이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예, 주님! 저는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합니다.”하고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결론은 매번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말씀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고백 위에 목자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쿼바디스’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폴란드의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Henryk Sienkiewicz)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마지막 장면이 이렇습니다.

네로 황제의 박해가 본격화 되면서 베드로 사도가 신자들의 권유와 도움을 받아 로마 밖으로 피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어떤 사람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이 오는데 자세히 보니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 Quo vadis, Domine?(주님,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내가 다시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해 로마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가던 길을 돌아서서 다시 로마로 들어가 순교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읽었던 복음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부분(요한 21,18-19)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어떠한 죽음을 맞이할지에 대한 암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목자의 길’은 ‘순교의 길’이기도 합니다.

2021년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탄생 200주년’이기도 하였습니다. 두 분이 남기신 서한집을 읽어보면 그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사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피의 순교자’로서, 그리고 최양업 신부님은 ‘땀의 순교자’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납니다.

이 두 분을 한국천주교회의 첫 사제와 둘째 사제로, 그리고 우리 선배 사제로 모시고 있는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들의 모범을 우리가 잘 따라야 할 것입니다.

 

3일 전에 우리는 주님 성탄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한 세상에 오셨지만 누울 자리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느님께서는 짐승이 머무는 마구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주님성탄대축일 밤미사 강론에서 ‘우리 모두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자.’고 하시면서 ‘작음의 은총,’ ‘작은 것의 신비’에 대하여 강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작음 안에서 세상에 오시는데 세상은 크고 웅장한 것만 찾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작음의 은총, 예수님의 강생의 신비, 육화의 신비를 우리가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말씀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또 다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