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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옹기와 바보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미사 강론)
   2022/06/08  11:52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미사

 

2022 06 06(월),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성모당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께서 1922년 5월 8일에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나셨습니다. 5월 8일이 음력인데 올해 양력으로는 6월 6일이 되기 때문에 오늘 김 추기경님 탄생 100주년 기념 추모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추기경님의 집안이 천주교를 믿게 된 것은 조부 때부터입니다. 할아버지 김보현 요한 공께서는 1868년 무진박해 때 충남 논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 아들인 김영석 요셉은 박해시대 때 많은 신자들이 그랬듯이 옹기장수를 하셨는데, 대구본당의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으로부터 대구 처녀인 서중화 마르티나를 소개받아 결혼하여 한동안 대구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김수환 스테파노는 김영석 요셉과 서중화 마르티나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부친 김영석 요셉은 직업이 옹기장수이기 때문에 옹기를 구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대구를 떠나 선산으로 갔다가 다시 군위로 가서 살았던 것입니다.

군위읍 용대리에 가면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이 있습니다. 이문희 대주교님 계실 때 김 추기경님께서 어릴 때 사셨던 집과 그 주변 땅을 매입하였는데, 한 5년 전에 그곳에 군위군에서 국비를 지원받아 공원을 조성하였던 것입니다.

그곳에 가면 추기경님께서 어릴 때 사셨던 집이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사셨던 집은 하도 낡아서 허물고 새로 지었습니다만 그 집을 ‘생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태어난 집이 아닌데 ‘생가’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어릴 때 살았던 집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기도 하는가 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네 살인가 다섯 살 때 그곳에 가서 사셨는데 신학교 다닐 때까지 사셨던 것 같습니다.

옹기장사를 하시던 아버님께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님이 행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던 것으로 압니다. 추기경님께서 생전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는 것을 보면, 어머님께서 행상을 나가셨다가 돌아오실 저녁때가 되면 붉은 노을이 지는 저 산 너머를 바라보곤 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시곤 하셨습니다.

몇 년 전에 정채봉 작가가 추기경님 어린 시절을 동화로 엮은 ‘저 산 너머’를 영화로 만들어 상영한 적이 있습니다.

추기경님의 어릴 적 꿈은 장사꾼이었다고 합니다.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 예쁜 색시와 결혼해서 홀로 되신 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사꾼이 아니라 사제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어머님의 권유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미 신학교에 먼저 들어간 형 김동한 가롤로 신부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세 살 위의 형인데 막내였던 추기경님께서 바로 위의 형을 무척 따랐던 것 같습니다.

김동한 신부님은 제가 신학생 때 저희 본당 신부님이셨습니다. 저희 본당인 화원성당에 계시면서 송현동의 결핵요양원의 원장을 겸임하시다가 나중에는 요양원 전담을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1983년 9월 28일 선종하실 때까지 계셨던 것으로 아는데, ‘밀알후원회’를 만드시고 우리 교구 사회복지의 기본 틀을 놓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김동한 신부님이 돌아가신 후부터 9월 28일이 되면 교구 사회복지회 주최로 추모미사를 봉헌하였고, 추기경님께서는 별일 없으면 거의 해마다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 주셨던 것입니다.

김 추기경님께서는 1951년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에 계산성당에서 정하권 몬시뇰과 함께 최덕홍 주교님으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남산성당에서 첫 미사를 드렸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본당신부를 두 번 하셨습니다. 사제가 되신 후 바로 안동성당(지금의 목성동성당)에서 1년 반을 하시고 최덕홍 주교님 비서로 한 2년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에 모친을 여이고 최덕홍 주교님까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하는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천성당(지금의 김천황금성당)에서 1년 정도 사목하시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나셨습니다. 김천성당에 계실 때 추기경님께서 추천하여 신학교에 보낸 유일한 아들 신부님이 계시는데, 오늘 이 미사에 참석하셨습니다. 부산교구의 왕영수 프란치스코 신부님이십니다.

왕영수 신부님께서는 올해 연세가 88세이신데 오늘 미사가 있다는 것을 아시고 참석하셨습니다. 왕 신부님은 김천본당 출신이시고 성의중고등학교 출신이십니다. 신부님께서는 얼마 전에 당신의 사재를 다 털어서 성의장학재단을 만드셨습니다. 단순한 장학회가 아니라 장학재단을 만드셨는데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으니까 마음이 그렇게 평화롭고 기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울대교구에 ‘옹기장학회’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추기경님께서 서울교구장에서 은퇴하실 때 만든 것으로 북한 선교를 지원하는 신학생들을 후원하는 장학회인 것으로 압니다.

김 추기경님의 호가 ‘옹기’입니다. 군위의 생가 옆에 옹기가마가 있습니다. 옹기는 우리 선조들이 일상생활 안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그릇입니다. 쌀을 담으면 쌀독이 되고 장을 담으면 장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술을 담으면 술독이 되고, 떡을 찌면 떡 시루가 되고, 콩나물을 키우면 콩나물시루가 되기도 합니다. 옹기는 곡식뿐만 아니라 오물도 담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그릇이었습니다.

김 추기경님께서는 이처럼 옹기 같이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구별하지 않고 똑 같이 한결 같은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시는 분이셨던 것입니다.

성모당 건물 왼편이 걸린 현수막에 무엇이라고 적혀있습니까? “서로에게 밥이 되어 주십시오.” 추기경께서 자주 쓰셨던 말씀이라고 걸은 것 같습니다. 상대방에게 밥이 되어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바보’라고 할 것입니다. 자기한테 필요한데도 상대방이 원하면 얼른 주는 사람이 바보일 것입니다.

사실 추기경님도, 예수님도 그렇게 사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자신을 우리들을 위해 다 내어 놓으셨던 ‘원조 바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당신이 그린 자화상 밑에 ‘바보야’라고 썼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스스로를 ‘바보’라고 하신 것은, 엄청난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제대로 실천하지도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신 뒤에 서울대교구에서는 ‘바보의 나눔’이라는 재단을 만들어 기금을 조성하고 그 기금으로 국내외의 어려운 사람들과 시설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추기경님에 대한 이야기는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 대단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한국 평협과 서울대교구에서 김 추기경님의 시복을 추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시복이 된다면 우리로써도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 성모당에 다녀가신 분 중에 두 분이 성인이 되셨습니다. 아세요? 누구세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십니다.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8년에 성령강림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오늘 제1독서(사도1,12-14)에도 나오듯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과 신자들과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요한 19,25-34)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랑하는 제자’는 사도 요한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그리스도인, 즉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모든 신자와 제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성모 마리아를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중의 하나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며 사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신다는 것은 교회의 어머니가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을 ‘여인이시여’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당신의 어머니를 ‘여인’이라고 부르심으로써 성모님이 신약 백성의 어머니, 곧 교회의 어머니이심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성모님이 계시니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 추기경님께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인물이 되신 것은 아버지의 신앙도 중요했지만 어머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이제 추기경님을 위해 기도드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보다 우리가 추기경님을 본받고 추기경님을 따라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교구를 위해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