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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맞게 살자 (와촌공소 농민주일 미사 강론)
   2022/07/20  14:53

농민주일 미사

 

2022. 07. 17. 와촌공소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이며 농민주일입니다. 재작년부터 저는 농민주일에 신자들의 농장을 축복하고 한 공소를 방문하여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영천 자천공소에 갔었고 작년에는 청도 동곡공소를 방문하여 미사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와촌공소를 방문하였습니다.

10여 년 전에 하양본당에 최홍길 신부님 계실 때 와촌공소 상태를 보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렇게 정식으로 방문하여 미사를 드리게 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와촌공소는 1940년대 초에 동강공소라는 이름으로 공소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때는 오막살이 초가집이었는데 이임춘 신부님 계실 때 하양본당의 강당을 철거하면서 생긴 목재로 공소 건물을 다시 지어 사용해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에 공소 이름을 와촌공소로 바꾸었고 그 후 지금의 건물을 지어 공소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동안 와촌공소는 이상호 베드로 신부님께서 매 주일 오셔서 미사를 드렸었는데 11년 전에 하늘나라에 가신 후에는 정재완 니콜라오 신부님께서 주일에 오셔서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두 신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지난 세월 동안 공소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이끌어 오신 역대 공소 회장님들과 교우 여러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저도 공소 출신이며 농부의 아들입니다. 제 고향은 달성군 옥포면 강림2동인데 동네 어귀에 ‘강림공소’라는 공소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늘 부모님을 따라 그 공소에 다녔습니다. 일제 강점기 어느 때부터 외할아버님이 초대 공소회장을 하셨는데, 해방 후 한 때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호열자, 즉 콜레라 때문에 세상을 떠나시는 바람에 저희 아버님께서 공소회장을 이어받아서 1988년 논공본당이 설립될 때까지 40여 년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마다 형들과 동생들과 함께 공소에 가서 아버님이 이끄시는 공소예절에 참여했으며 아버님의 강론을 들으며 자랐던 것입니다.

우리 집은 농사가 많았습니다. 자식 농사도 많이 지어서 우리 부모님은 자식을 5남 5녀를 낳으셨는데 제가 여덟 번째입니다. 농사는 주로 논농사였지만 사과 과수원도 하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년 내내 바빴습니다. 모내기철이나 추수철이 되면 학교 다니던 자식들도 일찍 나와서 거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바쁜 농사철이라도 온 식구가 큰방에 모여서 아침저녁으로 바치던 조과, 만과를 한 번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22년 전에 86세로 하느님 나라에 가셨고 어머님은 9년 전에 96세로 하느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농사를 지으셨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러면서 농사가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해마다 7월 셋째 주일을 농민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가 농민주일을 지내는 이유는 농민들의 수고를 기억하면서 농촌과 도시가 함께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맞게 살도록 하자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땅을 잘 가꾸고 잘 지켜서 우리들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 잘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생명의 가치, 자연 생태의 가치를 살리고 지속 가능하고 더욱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농민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시는 일에 긍지와 소중함을 가지시고 더욱 기쁘고 보람되게 사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루카복음 10,38-42은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 집에 들리셨는데, 마르타는 음식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고,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르타가 보기에 동생 마리아는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마르타가 시중드는 일 그 자체를 나무라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을 나무라십니다. 너무 시중드는 일에 정신을 쏟다보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일, 즉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시중드는 일보다 말씀 듣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정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요 하느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것을 선택했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제는 한티성지에서 ‘한티순교자마을 잔치’가 있어서 갔다 왔습니다. 한티성지에는 현재 37구의 순교자 묘소가 있습니다. 이름이 밝혀진 분은 서태순 베드로와, 조가롤로와 조가롤로 부인과 딸, 이렇게 네 분밖에 없고 나머지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명 순교자 묘소입니다.

이분들은 1866년 병인박해의 연장선에 있는 1868년 무진박해 때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순교하신 날을 정확히는 알지 못하나 대충 7월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순교자들의 기일쯤에 한티성지 봉사자들이 모여서 묘소들을 순례하고 미사를 드린 후 음식을 나누고 순례 체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곳 와촌공소도, 하양본당도 옛날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신앙의 터전입니다. 우리 순교선열들을 본받아 참으로 하느님을 잘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인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농민들의 수고를 기억하면서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 살고 우리 공동의 집인 이 지구를 잘 가꾸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