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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 (마리아폴리 파견미사 강론)
   2022/08/01  11:7

마리아폴리 파견미사

 

2022. 07. 24. 경주 코모도호텔

 

영남지역 ‘마리아폴리’가 이곳 경주에서 3년 만에 개최되었습니다. 저는 어제 오전부터 참석하였습니다만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작년에는 온라인으로 개최하였고, 재작년에는 키아라 루빅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온라인으로 개최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대화하는 데 불편하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600여 명이 모여 주님 안에서 형제들과 함께 이렇게 지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드릴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어제와 오늘 오전에 있었던 경험담들이 아주 좋았습니다. 특히 동연이라는 아이가 학교와 학원을 다니면서 이용했던 버스의 기사 아저씨들과 가졌던 친분관계를 듣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새가정운동과 새인류운동에 동참했던 분들의 경험담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권지호 신부님의 묵상안내 강의 ‘말씀의 결실’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잘 알아듣도록 또박또박 열강을 해주신 신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정하신 ‘제2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외할아버지가 누구신지 아세요? ‘요아킴’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외할머니는 누구세요? ‘안나’이지요. 성 요아킴과 성 안나의 축일이 7월 26일인데, 이날과 가까운 주일에 작년부터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 경주 마리아폴리에 참석하신 분들 중에서 65세 이상 되시는 분들이 140여 분이 되었습니다. 이분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박수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이 미사 후에 이분들에게 묵주를 하나씩 드리려고 합니다.

 

마리아폴리(Mariapoli)는 같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그 이상을 나누고, 경험담을 나누고,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상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일생을 바칠 가치가 있는 이상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이상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라는 이상 때문에 어떤 사람은 성직자가 되고, 어떤 사람은 수도자가 되며, 어떤 사람은 포콜라레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콜라레 운동은 하느님이라는 이상을 이 세상에 실현하고자 하는 운동이라 생각합니다. 하느님이라는 이상을 이 세상에 완벽하게 실현하셨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끼아라 루빅은 ‘또 하나의 예수가 되자’고 제안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세례와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예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뼛속 깊이까지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분명 부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실천적으로 또 하나의 예수님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끼아라가 이야기했던 ‘또 하나의 예수가 되자’는 것은 그분의 삶을 우리도 살자는 것인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끼아라가 말한 ‘새로운 양식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마리아폴리의 주제성구가, 지난주일 복음에 나왔던 말씀입니다만, 루카복음 10,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자기 집에 들르신 예수님께 시중드느라 분주한 마르타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진정 필요한 그 한 가지가 무엇일까요?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비행기 테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911테러’라고 하는데, 세계무역센터, 일명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 두 대가 연달아 와서 들이박는 바람에 불이 붙고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었는데 죽기 전 그 긴박한 순간에 전화로 자신의 가족이니 친지들에게 했던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부분이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그것만이 진정 필요하고 중요할 따름입니다. 그 외는 다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그것보다 부부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까요?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 그것보다 자녀에게 소중한 것이 있을까요?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세상을 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창세기 18,20-32 말씀으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인들도 있는데 그들을 죄인들과 함께 쓸어버리면 되겠습니까?’ 하면서 하느님께 협상하듯이 간청합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그 의인 열 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있어서 이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하느님께 간청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조카 롯이 소돔에 살고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를 다 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두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이 세상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1917년에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러시아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1917년은 러시아에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던 해였습니다. 러시아는 지금도 회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회개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종식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루카 11,1-13)도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기도의 모범으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오복음 6,9-13에도 주님의 기도가 나오는데 우리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것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다 같이 바쳐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여기에는 하느님 이름과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두고 비는 ‘하느님 간구’ 세 가지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죄를 용서해주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악에서 구해달라는 ‘우리의 간구’ 네 가지가 들어있습니다.

이처럼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하느님의 이름의 거룩하심과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목적, 기도의 본질은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실천할 힘을 받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어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