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 (범어대성당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
2024/08/16 17:21 |
성모승천대축일
2024. 08. 15. 범어대성당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오늘 8월 15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생활을 마친 다음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늘에 오르신 성모승천대축일이며, 또한 우리나라가 35년간의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광복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에는 성모님에 대한 네 가지의 ‘믿을 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모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것입니다. 구세주를 낳으실 분이시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태어날 때부터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교리인 것입니다.
둘째는, ‘성모님은 천주의 모친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을 낳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모님은 비록 인간이시지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교회가 부여한 것입니다.
셋째는, ‘성모님은 평생 동정이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으실 때는 물론이요 그 후에도 성모님께서는 평생 동정이셨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성모승천’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그 영혼과 육신이 하늘로 불려 올라가셨다는 것입니다.
성모승천에 관해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대교회 때부터 오랜 세기 동안 있었던 전승입니다. 그러나 믿을 교의로 선포된 것은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께서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이라는 회칙을 발표하심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거기에서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는 지상 생애의 여정이 끝난 다음 그 영혼과 육신이 천상의 영광 안에 받아들여지셨다.”
성모승천은 곧 하느님께서 성모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올리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과거 우리나라는 성모승천을 ‘성모몽소승천’(蒙召昇天)으로 표현하였었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이 하느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졌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모승천 교의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주일과 대축일마다 ‘신앙고백’을 통하여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하고 말합니다. 우리 신앙인의 근본적인 희망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근본적인 희망이 성모님에게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모승천대축일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광복절 이상으로 기쁜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옛날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했던 것에서 해방되었던 파스카를 큰 축제로 지내듯이 우리나라는 광복절을 큰 국경일로 지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50년 전 광복절 기념식에서 당시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께서 괴한의 총탄을 맞아 돌아가시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때 당시 육영수 여사는 만 50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9년 뒤에는 박정희 대통령도 부하의 총탄에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이런 험난한 일들이 있기는 있었지만, 광복절만은 정부와 단체들, 여와 야가 함께 모여 경축 행사를 했었는데, 최근의 뉴스를 보니까 올해의 광복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光復’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의 뜻이 ‘빛을 되찾았다.’라는 말인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는 빛이 아니라 아직도 어둠의 터널 속에서 헤매고 있는 느낌입니다. 언제까지 우리 안에서 이런 갈등으로 국력을 소모해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유독 고소 고발이 많다고 합니다. 툭하면 고소 고발합니다. 이런 것을 국민들이 정치하는 사람들한테서 배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소 고발뿐만 아니라 폭력도 많습니다. 묻지마 폭력, 데이트 폭력, 스토킹 폭력, 층간 소음 갈등으로 인한 폭력 등, 전에는 없던 폭력까지 생겼습니다. 분노 조절이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폐막한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적은 선수로 역대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메달이 걸려있는 치열한 경기들을 보면서 승패가 결정되고 난 뒤에 승자가 기뻐하고 패자는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승자든 패자든 서로 찾아가서 악수하고 포옹하면서 서로를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남산동 교구청 근처에 교구에서 아파트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날 교구청 식관 담당 수녀님께서 아파트 점검하러 갔다가 문 앞에 웬 바구니에 복숭아 네 개가 들어있는 것을 보시고 가지고 왔습니다. 그 바구니에는 이런 쪽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윗집입니다. 늘 죄송하며, 감사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윗집에 아이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발을 구르고 하는데, 죄송하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지난 6월경에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이신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님께서 한국에 휴가를 오셔서 전화 통화한 적이 있는데, 지난주에는 ‘유퀴즈’라는 TV프로에 나오셔서 뵌 적이 있습니다.
유 추기경께서는 로마에서 겪었던 하나의 일화를 들려주셨는데, 어느날 어느 신부님 댁을 찾아갔는데 집 앞에서 강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시계와 반지를 내놓으라 해서 주었는데 그것을 받고 냅다 달아나는 강도를 향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빈다’고 하면서 축복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반지는 추기경 서임식에서 교황님으로부터 받은 반지였습니다. 그 후 교황님을 뵈었을 때 이 이야기를 드렸더니 몸을 괜찮으냐 하시며 새 반지를 주셨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복음(루카 1,39-56)에서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마리아가 길을 떠나 유다 산악 지방에 사는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집에 갔습니다. 성모님께서 그 먼 곳에는 왜 가셨습니까?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며칠 전에 가톨릭평화방송 TV에서 ‘마리아’라는 영화를 봤습니다만,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되는, 그래서 이해할 수도 없고, 인간적으로는 엄청난 고난과 고통이 따를 수 있는, 그렇지만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큰 뜻으로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은 어떻습니까? 엘리사벳은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러자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며..”라는 ‘마니피캇(Magnificat)’이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우리의 삶도 이래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보호하시고, 이 땅에 평화가 정착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