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깨어 있어라.(마태 25,13) (5-7년차 사제연수 파견미사 강론) |
2024/09/03 15:18 |
5-7년차 사제연수 파견미사
2024. 08. 30. 제주 엠마오 연수원
그저께 마산교구의 박정일 미카엘 주교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내일 진주 신안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이 미사 중에 박정일 주교님과,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다 세상을 떠나신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박정일 주교님은 1926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셔서 사제가 되기 위해 덕원신학교에 입학하셨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고 신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더 이상 공부를 하지 못하고 평양교구청에 갔더니 홍용호 주교님께서도 납치된 것을 알고는 월남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6.25 한국전쟁이 터졌고, 1950년 12월에 월남하여 서울신학교에 합류했는데, 전쟁 중이라 대구, 제주, 부산으로 옮겨 다녔다고 합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로마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에서 1958년에 평양교구 소속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부산교구 사제가 되었다가 1966년에 마산교구가 설립될 당시 마산 문산본당 신부를 하였기 때문에 마산교구 신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77년에 제주 교구장 주교가 되었고, 전주 교구장으로 갔다가 1988년에 다시 마산 교구장으로 오셔서 2002년에 은퇴하셨습니다.
이렇게 박정일 주교님께서는 이북과 이남을 오르내리셨고, 처음에 평양교구 사제였다가 부산으로, 다시 마산교구 사제가 되셨으며, 주교가 되고서도 제주와 전주와 마산을 거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 생애가 참으로 파란만장하지만, 우리 가톨릭교회가 하나의 교회, 보편된 교회임을 박정일 주교님의 삶을 통해서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복음(마태 25,1-13)은 열 처녀의 비유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열 처녀 중에 다섯은 어리석었고 다섯은 슬기로웠다고 합니다. 다섯 처녀가 어리석은 이유는,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고, 나머지 다섯 처녀가 슬기로운 이유는, 등과 함께 기름도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신랑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신랑이 도착하자 기름을 마련하지 못한 처녀들은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고, 기름을 가지고 있던 처녀들만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은 마지막 13절 말씀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우리는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릅니다. 그러니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피정을 하고 연수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즉 늘 깨어 있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단계별 사제 평생교육으로 인해 제가 지난 3년간 매해 제주도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는 아름답고 이국적인 분위기로 인해서 국내에서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제주도가 매우 척박한 땅이었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죄인들의 유배지였습니다. 근대에는 신축교안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해방 후에는 4.3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슬픔의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백서사건의 주인공인 황사영의 부인 정난주 마리아도 노비가 되어 이곳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완당 김정희 선생님도 정치적인 이유로 모함을 받고 제주도에 유배를 왔었습니다. 대정읍에 가면 정난주 묘소가 있고, 바로 근처에 추사 김정희 유배지와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복사본이지만, 국보(제180호)로 지정된 ‘세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정난주 마리아가 비록 노비가 되어 이곳에 끌려오고, 완당 김정희 선생님이 죄인이 되어 이 먼 땅 제주도에 유배를 왔지만, 이곳에서도 그분들은 늘 깨어 있는 삶을 살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우리도 이 세상 살면서, 더 나아가 주님의 사제로서 살면서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하고, 혹은 무력함이나 권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오해나 모함을 받고 시련을 겪기도 하며, 또는 재물이나 이성의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을 이겨내는 것은, 얼마나 우리가 깨어 있는가 하는 데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년 3월에 포항 흥해본당 청하공소를 어떤 분의 기부로 다시 지어 봉헌했습니다. 그 공소 건물을 처음에는 ‘최해두 회심 기념 경당’이라 이름 지었었는데, 복자나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으면 안 된다고 하여 스토리만 최해두와 그의 아들인 하느님의 종 최영수 필립보 이야기로 입혔습니다.
최해두는 조선 천주교회 초창기에 활동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정약용 선생이 포항 장기로 유배를 오고 난 후 한 3개월 후에 포항 흥해로 유배를 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흥해에서 5-6년 유배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떠나기 전에 ‘자책(自責)’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슬프고 슬프도다! 다른 사람들은 천주의 은혜로 순교하여 영복을 누리는데, 정작 나는 이 흥해 땅에서 이 무슨 꼴인가! 만일 이 모양으로 죽게 되면 어찌 한심하고 가련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배교한 자신을 스스로 꾸짖는 내용입니다.
최해두 자신은 배교하였지만 마지막에는 회두를 하였고, 자식들에게는 제대로 된 신앙을 물려준 것 같습니다. 아들 최영수 필립보는 한양에서 흥해까지 내려와서 부친의 시신을 거두었고, 신유박해 후에 초토화된 교회를 재건하는 데 온몸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는 1841년에 한양 우포도청에서 곤장 100대를 맞고 순교하였는데,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에 선정되어 현재 시복 추진 중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느 시대 어떤 세상을 살든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께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가 북아프리카에서 밀라노로 가게 된 것은, 그곳의 왕립학교의 수사학 교수로 뽑혀서 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식에 대한 자만에 빠져있었고 마니교의 교리에 의하여 쾌락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랬던 그는 어머니 모니카의 끊임없는 기도와 암브로시오 주교님의 영향으로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어서 읽어라.’ 하는 영적인 소리를 듣고 성경을 펼쳐 읽게 됩니다. 고백록에 그 장면이 이렇게 나옵니다.
“침묵 중에 집어서 펼쳐 읽으니 제 눈에 들어온 첫 구절은 이러했습니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3-14)
더 읽을 마음도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자마자 선명한 빛이 제 마음에 쏟아져 들어왔고 온갖 의심과 어두움이 말끔히 사라져 버렸습니다.”(고백록 8,12,29)
오늘 독서(1코린 1,17-25)와 복음의 큰 주제는, 하느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를 대비하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기름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던 처녀들은 세상의 지혜에 따라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날의 아우구스티노도 세상의 지혜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그를 결정적으로 회개의 길로 이끈 것은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지혜였던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합시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가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코린토 1서 1, 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