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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생복종(善生福終) (위령미사 강론)
   2016/11/05  12:17

위령미사

 

2016. 11. 03. 성직자묘지

 

며칠 동안 추웠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날씨가 풀린 것 같습니다. 11월은 계절적으로도 날씨가 쌀쌀할 뿐만 아니라 낙엽이 떨어지는 쓸쓸한 계절로서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하는 시절입니다.

교회는 이런 11월을 위령성월로 정하여 먼저 세상을 떠나신 부모, 형제, 친지들과 조상들, 특히 연옥영혼들을 기억하고 기도하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11월은 우리 자신들의 죽음에 대해서도 묵상하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옛말에 ‘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때가 되면 다 죽게 마련이고, 모든 만남은 헤어짐이 있게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는 것을 안다는 것과 그것을 몸으로 느낀다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나도 죽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 죽음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직자 묘지 입구 양 기둥에 “HODIE MIHI, CRAS TIBI”라는 라틴어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말은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나에게 닥친 이 죽음이 내일 너에게 올 수 있으니까 늘 깨어 있어라’는 격언인 것입니다.

이 묘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그분들이 돌아가신 신부님들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들의 죽음도 생각하면서 잘 준비하고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과 기도를 바치리라 생각합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성직자 묘지는 아주 좋은 기도의 장소이며 자기 교육의 장소라고 생각됩니다.

 

지난 주 어느 날 ‘시간의 종말’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시사회를 다녀왔었습니다. 영화는 조선시대에 파리외방전교회의 신부님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선교를 하다가 목숨을 바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오늘날에도 순교영성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분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고 자신은 개신교 냉담자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순교자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다가 느꼈던 감동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천주교에서 말하는 ‘선종(善終. 善生福終의 준말)’이란 말의 의미를 이야기하며 자신도 선하게 살다가 복되게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선종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종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 영화는 잘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HODIE MIHI, CRAS TIBI”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오늘 나에게 온 영원한 생명이 내일 너에게 올 수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하는 격려의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향해 가는 희망인 것입니다.

따라서 육신은 이곳에 묻혀 계시지만 영혼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복을 누리고 계시는 분들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 품 안에 들 때까지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요즘 우리 교구가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 영광도 있지만 죄도, 상처도 있음을 절감합니다. 성인들의 영광뿐만 아니라 죄인들의 구원의 과정도 함께 견뎌내고 살아내어야 하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천상에 계신 모든 성인들께서 특별히 우리 교구를 위해 빌어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이번 일로 다들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기도 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시련과 정화의 시기를 거치며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 오기를 간절히 믿고 바라고 기도해 봅니다.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죄 많은 인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만이 구원해 줄 수 있는 나약한 인간인 것입니다. 그 험난한 수난과 죽음을 겪어내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들에게 힘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11,25-30)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