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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Say Forever!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종신서원 미사 강론)
   2014/02/05  9:48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종신서원


2014. 02. 02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먼저 오늘 종신서원 하시는 일곱 분의 수녀님들, 축하드리며 주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미사에서 첫 서원을 하신 일곱 분의 수녀님들께도 축하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지 40일째 되는 날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고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내용이 오늘 복음말씀인 루카복음 2,22-40에 잘 나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오늘 주님 봉헌축일을 ‘봉헌생활의 날’로 정하셨는데, 여기서 ‘봉헌생활’이라고 하면 자신을 오로지 주님께 봉헌한 수도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봉헌생활의 날’에 수녀님들이 종신서원을 하는 것은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한 2년 전인가 ‘사랑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영국 런던 노팅힐에 있는 어느 가르멜 수녀원의 생활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그 전에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그것과 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위대한 침묵에서는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데 반해 이 영화에는 몇몇 수녀님들이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솔직하면서도 인간적이고 또 신앙적이어서 좋았습니다. 

 그 영화에서 수녀님 한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가르멜은 자기를 바치는 삶입니다. 그러지 않고 가르멜의 전례나 무슨 사도직이 좋아서 산다면 오래 가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봉헌한다.’는 말은 ‘자신을 바친다.’는 말입니다. 가르멜이든 샬트르든 관상수도회든 활동수도회든 수도생활의 본질은 자신을 바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어느 수도회의 전례나 사도직이 좋아서 산다면 본질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도자의 생명이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여튼 수도자는 자신을 하느님께 바쳤기 때문에 이제 자신은 없고 하느님의 뜻만 있는 것입니다. 종신서원을 한다는 것은 종신토록 하느님의 뜻만을 쫓아 살아가는 완전한 봉헌생활을 하겠다는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종신서원 하시려는 수녀님들은 물론이고, 이미 종신서원을 하신 수녀님들도 진정한 봉헌생활의 의미를 다시 마음에 새기며 주님 뜻대로, 그리고 자신이 서원한 대로 자신을 바치는 삶을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지난 해 7월 22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가 한국 진출 125주년을 맞이하여 경축행사를 가졌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진출 125년 만에 대구관구장을 지낸 바가 있는 마리아 고레띠 수녀님을 한국인 첫 총장으로 보내주셔서 모두 기뻐하고 감사했었습니다. 그리고 내년이면 대구 샬트르 수녀회가 드디어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그동안 한국의 샬트르 성 바오로수녀회가 오랜 역사와 함께 많은 성장을 가져왔다는 의미이고, 또 세계 보편교회를 위하여 헌신해왔으며 앞으로도 더욱 헌신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5월 말에는 제가 남미 볼리비아에서 선교하고 있는 저희 교구 신부님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돌아오는 길에 페루에서 선교하고 있는 대구 샬트르 수녀님 두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두 분 다 열심히, 그리고 기쁘게 자기 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는 대구 샬트르 수녀님 세 분이 파견되어 있습니다. 지난 20년 이상 그곳에서 봉사하셨던 카타리나 수녀님께서 최근에 돌아오셨습니다만. 

 그런데 지난해 성주간 때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이슬람반군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났었습니다. 그래서 성목요일 성유축성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주교좌성당에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고 각자 본당에서 지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안정이 안 되고 쿠데타는 내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밖에 잘 나가지도 못하였고 성당과 수녀원은 많은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프랑스군과 유엔군이 주둔함으로써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프리카는 참으로 가난하고 환경이 열악한 곳이라는 것을 다 알기 때문에 그것을 각오하고 들어갑니다만,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정국이 안정이 안 되어 수시로 쿠데타나 내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중에서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샬트르 수녀님들 덕분에 우리 교구 신부님 두 분이 그 위험한 아프리카에 재작년부터 파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인사에 또 한 분의 신부님이 아프리카에 가기 위해 불어를 배우러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내일 오전 11시에는 볼리비아로 떠나는 두 분의 신부님을 위한 파견미사가 성모당에서 있을 예정입니다. 이번 인사에서 한 분의 신부님이 귀국하고 두 분이 떠나니까 이제 볼리비아에서 선교하는 우리 교구 신부님은 여덟 분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우리 교구 신부님 한 분이 파키스탄 현지인 사목을 위해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신부님이 경상도 지방 최초의 본당신부였던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의 고향인 프랑스 벨포르 교구로 가서 현지인 사목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본인이 자원하여 선교를 떠나는 것입니다. 보편교회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자기 한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작년 3월에 우리 교회에 해성처럼 나타나신 분이 계십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작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2013년 올해의 인물’로 그분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분이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십니다. 그분이 교황으로 선출된 지 아직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교회 안팎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얼마 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새해 결심’이라는 글을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황님의 새해 결심이라기보다는 지난 한 해 동안 교황님께서 하셨던 말씀 중에서 우리가 새겨들었으면 하는 말씀 열 가지를 누군가가 뽑아서 정리해놓은 것 같습니다. 그 열 가지 말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험담하지 마십시오. Don’t gossip.

2. 음식을 남기지 마십시오. Finish your meals.

3. 타인을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make time for others.

4. 검소하게 사십시오. Choose the ‘more humble’ purchase.

5. 가난한 이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Meet the poor in the flesh.

6.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Stop judging others.

7. 생각이 다른 사람과 벗이 되십시오. Befriend those who disagree.

8. 투신하는 것을 두려워 마십시오. Don’t be afraid to say “forever.”

9. 주님을 자주 만나 대화하십시오. Make it a habit to ‘ask the Lord.’

10. 기쁘게 사십시오. Be happy.

 

 첫 번째 ‘험담하지 말라’는 말씀은 지난여름에 교황님께서 신학생들과 수련수녀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동체생활에 대하여 하신 말씀 중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 ‘투신하는 것을 두려워 마십시오.’라는 말은 영어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Don’t be afraid to say “forever.” 

여기 나온 번역이 옳은 번역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forever.’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입니다. ‘forever’, 즉 ‘영원히’, ‘종신토록’ 이라는 말은 종신서원 하시는 우리 수녀님들이 진정으로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거의 모든 성당에서는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복합니다. 초는 자신을 태워서 빛을 냅니다. 사람들도 초처럼 세상을 밝히고 싶어 하기는 하지만 자신을 태우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태우지 않으면 빛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자신을 태워서 빛을 내겠습니까? 

 봉헌생활은 자신을 태워서 자신을 바치는 삶입니다. 그래야 빛을 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