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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을의 기도 (최영수 요한 대주교 5주기 기일미사 강론)
   2014/09/03  14:44

최영수 요한 대주교 5주기 기일미사


2014. 08. 31. 연중 제22주일


 오늘은 최영수 요한 대주교님 선종 5주기가 되는 날로서 이곳 성직자 묘지에서 최대주교님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미 최대주교님께서는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이 미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다시 한 번 청하면서 남아있는 우리들도 주님의 뜻대로 열심히 살기를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한 2주 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우리나라를 방문하셔서, 마치 성탄절에 산타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가듯이 우리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교황님이 오셨던 4박 5일간을 어떤 매스컴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여튼 교황님께서는 최초의 아시아 방문지로 우리나라를 택하셨고, 조선시대 순교자 124위를 복자품에 올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청년대회 뿐만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들과 위안부 할머니들, 장애인 등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시고 위로와 격려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제 교황님께서 로마로 돌아가신 지 2주가 되었습니다만 그 때 그 감동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최영수 대주교님께서 살아계셨다면 교황님도 직접 만나셨을 것이고 참으로 좋아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1998년에 교구 인사발령을 받고 교구청 사목국의 사도직담당으로 들어왔었습니다. 그때 최대주교님께서는 대구평화방송 사장으로 재임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만 11년 동안 최대주교님과 교구청 주교관에서 함께 살면서 가까이 모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최대주교님께서는 교구장 착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암이 재발되어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셨습니다. 

 최대주교님께서 착좌하시던 날 그 자리에서 저는 그분으로부터 보좌주교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대주교님께서 선종하시던 날까지 곁에서 잘 모시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가까이에서 모셨기 때문에 저로서는 그분에 대한 회상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까이 모시면서 최대주교님에 대해서 제가 느낀 점은 대주교님께서는 당신이 하셔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하시면서 마음이 넓으시고 또한 남을 잘 배려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투병을 하시면서도 2년 가까이 교구장으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다 하셨고 그 후 투병생활만을 하실 때에도 주교로서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대주교님께서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이 분명 있었을 터인데도 한 번도 당신의 병에 대한 불평을 하시지 않으셨고, 또 누구를 원망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 모든 고통을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봉헌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오늘 제2독서인 로마서의 이 말씀처럼 최대주교님도 그렇게 사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하느님께 대한 최대주교님의 굳은 믿음과 성모님께 대한 의탁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마태 16,21-27)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고 맙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하면 수난을 예고하신 예수님을 베드로가 붙잡고서는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수난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은 주님께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하며 베드로를 칭찬하셨던 예수님께서 이제는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하시며 심하게 꾸중을 하십니다. 이제 반석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심한 꾸중을 들어야만 했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수난예고를 하셨을 때 그것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것 같습니다. ‘많은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라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말씀에서 ‘죽는다.’는 말만 귀에 들였지 ‘다시 산다.’는 말은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죽음만 보지, 다시 사는 것을 잘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러니칼하게도 부활을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더러 있는 것입니다. 바로 조금 전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던 베드로도 수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을 붙잡고는 메시아가 그럴 수는 없다고,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셔야 하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우리들의 삶의 과정은 십자가의 길이지만 결과는 부활과 영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최대주교님을 비롯하여 우리 선배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그렇게 믿고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은 8월의 마지막 날로서 여름의 끝자락이기도 하고 가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가 참 많이 왔었는데 요즘은 날씨가 매우 좋습니다. 그래서 들판의 곡식들이 잘 익을 것이고 과실들이 잘 영글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후면 추석이 다가오고 또 추수할 때가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런 자연과 함께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수확할 때, 추수할 때가 올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지금은 우리 모두 사랑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