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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큰 기쁨의 날 (124위 순교자 시복 감사미사 강론)
   2014/09/11  16:49

관덕정 순교자 현양후원회원의 날 124위 순교자 시복 감사미사


2014. 09. 06. (토)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라 부르고 5월 29일에 그분들의 축일을 거행하도록 허락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이 시복 선언이 끝남과 동시에 광화문 광장에서는 성가대의 찬가와 신자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로 이름 붙여진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 크기의 124위 복자그림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은 불과 3주 전에 우리 신자들과 온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났던 일입니다. 

 3주 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당신의 휴가도 반납하시고 우리나라에 오셔서 우리들에게 참으로 큰 선물들을 주시고 가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조선시대 순교자 124위를 복자품에 올려주셨던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아시아청년들을 만나셨고 또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위안부 할머니들, 장애인 등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시고 위로와 격려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4박 5일 동안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당신을 내어주려고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노구를 이끌고 다니셨던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4박 5일의 일정을 마치시고 바티칸으로 돌아가신 지 3주가 다 되었습니다만 그 때 그 감동이 아직도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교황님께서 떠나신 후 우리 교구는 시복경축 문화예술제를 교구 평신도위원회와 평협이 주최가 되어 교구청 경내에서 5일간 개최하였습니다. 그리고 관덕정순교기념관에서도 시복경축 및 순교자 현양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또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모두 열 가지가 되던데 잘 진행되고 있지요? 열 번째 이벤트가 ‘교황님, 반월당에서 만나다.’라는 것인데 저도 지난달 어느 날 여영환 신부님과 함께 반월당에 가서 교황님을 만났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교황님 방한기간 동안 다른 주교님들과 함께 서울에 머물면서 교황님의 행사에 거의 참석하였습니다. 작년 3월 13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신 첫날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이번에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에게서 저는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 착한 목자의 모습, 참된 지도자의 모습, 그리고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종교나 국가를 떠나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교황님께서 떠난 우리나라와 우리 한국 교회에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교황님께서 남기신 말씀과 행동들을 보고 듣고 느낀 대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숙제가 남은 것입니다. 이 숙제를 다 하는 것이 우리 순교복자들을 현양하는 것이며 그분들의 뒤를 따르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124위 복자의 대표 순교자는 윤지충 바오로입니다. 그는 전라도 진산의 유명한 양반 집안의 자제로서 고종사촌인 정약용 요한을 통하여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고 이승훈 베드로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북경의 구베아 주교님이 제사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따라 집안의 신주를 없애버렸고 그 다음해 모친이 돌아가시자 유교식 제사 대신에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던 것입니다. 결국 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정에까지 보고가 되어 심문을 받다가 1791년 12월 8일 전주 남문 밖에서 이종사촌 권상연 야고보와 함께 참수되었던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124위 중에서 최초로 순교한 분들입니다.

 제사 문제 때문에 일어난 이 박해를 신해박해라고 합니다. 그리고 124위 순교복자들의 많은 분들이 정조 임금이 돌아가시고 난 뒤 1801년에 일어난 대박해인 신유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입니다. 여기에는 124위 중에서 유일한 성직자인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이 계시고,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아버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가 있고, 여신도회장 강완숙 골룸바가 있으며 전라도의 사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그리고 그의 아들과 며느리인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을해박해와 정해박해 때 순교하신 대구의 순교자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 한 분 한 분의 생애와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 순교는 참으로 하느님의 은혜라 생각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분들을 ‘복된 자’, 즉 ‘복자’라 부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조실록 33권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유혈이 낭자하면서도 신음 소리 한 마디 없었다. 그들은 천주의 가르침이 지엄하다고 하면서 임금이나 부모의 명은 어길지언정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며 칼날 아래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5;38-39)

 오늘 제2독서로 들은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이 어느 때보다도 실감나게 감동으로 와 닿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의 순교복자들이 이번에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시복미사 강론말씀에서 하신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 번 들어봅시다.

 “오늘은 모든 한국인에게 큰 기쁨의 날입니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이 남긴 유산, 곧 진리를 찾는 올곧은 마음, 그들이 신봉하고자 선택한 종교의 고귀한 원칙들에 대한 충실성, 그리고 그들이 증언한 애덕과 모든 이를 향한 연대성, 이 모든 것이 이제 한국인들에게 그 풍요로운 역사의 한 장이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의 유산은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하여 일하도록 영감(靈感)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전구와 더불어 모든 한국 순교자들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온갖 좋은 일과 믿음 안에서, 또 한결같이 거룩하고 순수한 마음과 사도적 열정 안에서 항구함의 은총을 받아, 사랑하는 이 나라에서부터 아시아 전역을 거쳐 마침내 땅 끝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증언하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