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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교 입학미사 강론)
   2015/03/02  10:58

신학교 입학미사


2015. 03. 01. 남산동 대신학원 대성당


 찬미예수님.

 여러분들의 신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보니까 옛날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던 날이 생각납니다. 그 때가 1972년이었으니까 지금부터 43년 전의 일입니다. 그날 새벽 일찍이 옷가지 등을 가득 넣은 큰 가방 하나를 손에 들고 그리고 이불 보따리를 짊어지고 시골집을 나섰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아버님,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버스를 타고 대구로 와서 대구역에서 대전으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그리고 대전역에서 내려서 역 앞에서 국밥 한 그릇 사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서대전역으로 가서 전라도 광주로 내려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했습니다. 

 기차가 논산을 거쳐서 김제평야를 달리는데 창밖은 잿빛 하늘에 눈발까지 날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리도 원하던 신학교에 가는 것이었지만 그날은 기차가 마치 춥고 삭막한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날씨와 환경도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아는 사람 한 사람 없는 전라도 땅에 있는 신학교에 혼자서 찾아간다는 그 자체가 그런 느낌을 갖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구에 성소모임도 없었기 때문에 입학시험 치던 날 잠깐 봤을 뿐, 아는 동기도, 아는 선배도 한 사람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신학교 생활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학교 시설과 환경이 깨끗하고 좋았으며 식사도 집보다도 잘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조금 살아보니 제가 생각했던 신학교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어떻게 저런 학생이 사제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왔지? 어떻게 저런 선배가 있을 수 있지? 하는 의구심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차츰 신학교가 천국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미성숙한 사람들, 배워야 할 학생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사실 저를 포함하여 우리들은 아직도 미성숙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배워야 하고 더 성숙해져야 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이 성소도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계시는 교수 신부님들께서 여러분의 성소의 성숙을 위해 도와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노력과 의지와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도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지난 사순 제1주일의 제1독서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사순 제2주일 제1독서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사악 제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인 사순 제3주일에는 제1독서로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고 죄악에 물든 인류를 새롭게 창조하시려고 점진적으로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를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더 큰 축복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2,18)

 이리하여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이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세상의 모든 민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들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수난 예고를 하시는 예수님을 붙들고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마태 16,22 참조)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호된 꾸중을 하셨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이런 제자들을 데리시고 예수님께서는 높은 산에 오르셨는데 거기서 당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고 하늘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이 사건이 있은 후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가 두 차례 더 있었지만 제자들은 역시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드디어 실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고 사흘 날에 부활하신 뒤에야 그들은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상에서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부족한 신앙도 이처럼 성숙해 갈 것입니다. 

 오늘 시작하는 신학교 생활도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조금씩 성숙해 갈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느님을 신뢰하고 믿으며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도 변화할 것입니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새로운 땅에서 새 삶을 시작하였듯이, 아브라함이 모리야 산에서 내려와 아들 이사악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듯이,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내려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향하여 힘차게 출발하였듯이,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이 타볼 산에서 내려와 다시 제자수업을 열심히 시작하였듯이 이제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신입생이든 재학생이든 모두가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신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허락해 주신 분들, 특별히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분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