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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께서 부어주신 하느님 사랑 (SINE 사제피정 파견미사 강론)
   2017/06/12  11:57

SINE 사제피정 파견미사


2017. 6. 9. 한티 피정의 집

 

SINE 프로그램 중에서 케리그마(Kerigma) 피정을 3박 4일 동안 했습니다. 작년 주교영성모임 때 인천교구의 정신철 주교님께서 소개를 해서 괜찮겠다 싶어 우리 교구는 처음으로 교구청 신부님들과 특수사목 신부님들 중심으로 신청을 받아 SINE 피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케줄이 빡빡하기 때문에 조금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체적으로 이번 피정은 보람과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를 비롯해서 많은 신부님들이 회심체험을 하고 자신의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며, 그래서 피정을 마치면서 평화와 기쁨을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남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자신이 하느님 체험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을 체험시킬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피정을 하면서 오랜만에 사제로 돌아간 느낌, 그냥 순수한 피정 수강자 내지 참가자로서의 자세로 참여를 했고, 그 때문인지 마음이 편했습니다. 주교가 되기 이전에 신부로서 피정을 지도하고 피정을 받기도 하고, 신자들과 어울려서 강의도 하고 발표도 하고 함께 기도도 하고 했던 그런 좋은 느낌을 참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주교가 된 뒤에도 물론 해마다 피정을 했지만 이런 느낌은 ‘참 오랜만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원래 있었던 자리, 저의 정체성을 찾는 그런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율법학자들이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 메시아는 혈통에, 혈연관계에 메이는 그런 분이 아니다’라고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이에 군중들이 기뻐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처럼 이 피정이 나의 정체성을, 나의 근본을 정리해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직자이고, 혹은 주교이고 혹은 사제이지만 그 전에 하느님 자녀이고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나와의 직접적인 친밀한 관계가 제대로 정립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바탕에서 사제가 되고 주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본을 알고 체험하고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INE 피정프로그램에서 참회예절과 봉헌예절을 중요하게 체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런 예절이나 성사를 집전만 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한 사람의 신자처럼 내맡겨졌던 것입니다. 일반 사제피정에서는 그렇게 안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것을 먼저 당해보는 느낌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 피정을 인도한 마르코 신부님이나 마르타 자매님이 선생님처럼 우리들에게 교리를 가르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자신의 체험을 우리한테 나누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지금까지 이성적으로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배웠고 가르쳤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따라와야 합니다. 

 

사목국장 신부님께서 이번 달 사제월보 사목논단을 썼는데, 제목이 ‘교세통계표에서 징표 찾기’입니다. 내용을 읽어보면 작년 우리 교구 교세통계표와 2015년에 10년 만에 했던 인구주택총조사에 나타난 천주교 불교 개신교 교세통계를 비교 분석했는데, 그걸 보면서 개신교가 지난 10년 동안에 크게 약진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교와 천주교는 퇴보를 했는데 퇴보를 해도 인구대비에 있어서 심각한 상태고, 개신교는 청소년 청년이 별로 변동 없이 전체적으로 진보를 하는데 천주교 불교는 특히 심각하게 청소년과 청년이 퇴보를 하고 있습니다. 사목국장 신부님은 그 원인 중에 하나로 가톨릭교회와 성직자의 권위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한 컨설팅 회사가 ‘한국의 문제는 ‘NATO’다‘ 라는 지적을 했는데, ‘NATO’는 약자로, ‘NO ACTION TALK ONLY’로 ‘행동은 안하고 말만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한국의 문제이면서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이 신부님은 지적하면서 같이 고민을 해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 신부님들이 목사님들보다도 윤리도덕적인 면에서 잘못 살아서 그런가 생각을 해 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사회활동을 많이 안 해서 그런가 생각해 보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구 신자 50%가 냉담자입니다. 세례 후 1,2년 안에 많은 이들이 냉담합니다. 왜 그럴까요? 깊은 하느님 체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일미사에 나오는 사람들도 정말 기쁘게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 몇 %될까요? 물론 성사도 보고 단체활동도 하지만 깊은 회심체험, 하느님 체험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Kerigma, 곧 복음 선포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로써 하느님을 전하고 예수님께서 주님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의 설교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다’하고 선포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당신들이 나무에 매달았던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고, 그분이 바로 우리 구원자이며 메시아이시다.’하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선포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 그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번 피정을 하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에는 소홀히 하면서 다른 주변에 있는 것에 매달리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합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서 에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거듭남의 체험, 새로남의 체험이 사람들 안에 이루어진다면 선교는 저절로 따라올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당신 섭리로 좋은 길로 이끌어주시고 좋은 선물을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이번 피정을 하면서 우리 신부님들이 새로운 성령강림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서 더 이상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신부님들의 마음 안에 하느님 약속에 대한 확신과 성령을 통한 예수님의 주도권이 더욱 확장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안에 새로남의 체험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이 피정으로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로마서 5장 5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지난 4박5일 동안 우리들에게 하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