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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로운 바리사이 (2대리구 사제피정 파견미사 강론)
   2017/06/19  9:58

2대리구 사제피정 파견미사

 

2017. 06. 16. 한티피정의 집

 

가끔 한티성지에 오면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사실 한티성지는 우리 교구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재작년이 을해박해(1815년)가 일어난 지 200년이 되었습니다만, 한티에 신자들이 최초로 모여 살기 시작하였던 때가 을해박해 때가 아니었나 보고 있습니다. 경상도 북부지방, 즉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영양 일월산 등지의 산골짜기에 숨어살던 신자들이 1815년 어느 날 갑자기 체포되어 그 당시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에 압송되어 감사한테 재판을 받고 관덕정에서 참수되셨고 어떤 분들은 옥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중에 11분이 지난번에 복자가 되셨습니다. 그분들이 대구 경상감영에 갇혀있는 동안에 그 가족들이 한티에 숨어있으면서 한 번씩 옥바라지 하러 대구읍내로 내려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한티성지에서 피정을 하면서 그 옛날 오로지 신앙 때문에 목숨을 바쳤고 그 신앙 때문에 온갖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 골짜기에서 살았던 우리 선조들을 기억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복음말씀으로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산상설교 부분을 봉독하고 있습니다. 산상설교는 5장의 ‘참 행복 선언’으로부터 시작하여 7장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복음말씀 중에서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애송되는 말씀이 여기 산상설교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만, 반대로 실천적인 면에서는 가장 대접을 받지 못한 말씀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말씀도 그렇습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마태 5,28-29)
우리가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실행하였다면 우리 중에는 많은 이들이 불구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끊어버릴 것은 끊어버리라고 요구하십니다. 
참 행복 선언도 그렇습니다만 뒤 이어 오는 말씀들도 기존의 것을 뒤엎으면서 ‘새로운 정의’를 말씀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는 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철저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느님과의 올바를 관계, 이웃과의 올바를 관계를 위하여 법과 행동 이전에 근본적인 마음 자세부터 뜯어고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제 읽었던 복음은 이런 말씀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과연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들의 의로움보다 능가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바리사이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하면서, 내가 오늘날 新 바리사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교구 사목국장 신부님께서 이번 달 사제월보 사목논단을 썼는데, 작년 우리 교구 교세통계표와 2015년 우리나라 인구주택총조사에 나타난 천주교 불교 개신교 교세통계를 비교 분석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개신교는 지난 10년 동안에 크게 약진을 했지만 천주교와 불교는 심각하게 퇴보를 했습니다. 사목국장 신부님은 그 원인 중에 하나로 가톨릭교회와 성직자의 권위적인 태도를 지적하면서, 미국의 한 컨설팅 회사가 “한국의 문제는 ‘NATO’다.” 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였습니다. ‘NATO’ 라는 말은 ‘NO ACTION, TALK ONLY’ 란 말의 약자로 ‘행동은 안하고 말만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 ‘NATO’는 우리나라의 문제이며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이기도 하다고 하면서 같이 고민을 해보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오늘날 新 바리사이일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이곳 한티에서 교구청에 근무하는 신부님들과 특수사목을 하는 신부님들 48명이 피정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인천교구에서 지난 2년 동안 실시했던 SINE 프로그램 중에서 케리그마(Kerigma) 피정을 하였습니다. 
남미의 콜롬비아에서 신부님 한 분과 평신도 한 분이 와서 강의하고 지도하였는데 일정이 좀 빡빡하여 처음에는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 좋은 반응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이 피정을 하면서 오랜만에 같은 조원 신부님들과 함께 마음에 있는 것을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신부님들이 피정을 하면서 평화와 기쁨을 찾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해마다 왜 피정을 합니까? 어떤 분은 이 기회에 ‘가서 좀 쉬자’ 하면서 피정에 임하기도 합니다. 쉬는 것도 피정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만, 피정은 근본적으로 회심 체험과 하느님 사랑 체험을 통한 ‘새로남’의 체험, ‘거듭남’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여기서 새로 난다는 것은 단순히 성사적인 차원을 뛰어넘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새로 나야 하고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제로서 이런 피정을 통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더욱 좋은 사제로, 더욱 착한 목자로 거듭나는 체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 피정으로 이끌어주시고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