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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베트남 소녀의 용서와 화해 (노블)
   2015/10/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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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소녀 킴 푹의 ‘용서와 화해’

  십자가를 안테나로!
  1972년 6월 8일,  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 근교 트랑 방(Trang Bang) 마을에는 미군 전폭기들이 네이팜탄을 엄청나게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아래서 닉 우트라는 21살의 베트남인 AP통신 사진기자는 불타오르는 마을로부터 탈출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발가벗은 채 온몸에 화상을 입고 울며 뛰어나오는 한 소녀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본능적으로 카메라셔터를 눌렀고 즉시 그녀를 인근 야전병원으로 급히 이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은 이후 <전쟁의 공포>라는 제목으로 Life지에 실렸고 1973년, 닉 우트(Nick Ut)는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사진기자들의 최고 명예인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한편 화상치료후 결혼을 하여 러시아를 거쳐 캐나다로 망명하여 현재 그곳에 거주하는 저 유명한 사진<전쟁의 공포>의 비극적인 주인공인 킴 푹(Kim Phuc 1963~ )여사는 얼마 전에 펴낸 자서전 ‘용서와 화해’에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1972년, 9살이었던 나는 미군이 투하한 네이팜탄의 파편과 화력으로 얼굴을 제외한 전신 65%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그리고 나의 두 사촌은 미군의 폭격으로 그날 목숨을 잃었고 나는 딕 우트 기자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남베트남 코레이 병원으로 후송되어, 17번에 걸친 피부이식 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1984년 독일에서 마지막 수술을 받은 후에야 목과 어깨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2년 뒤, 나는 쿠바의 하바나대학에 유학갔다. 거기서 나는 같은 베트남 학생인 토안을 만났고, 그는 내 남자 친구가 되었다. 그는 내게 수영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불에 덴 살갗 때문에 나는 햇빛을 피해야 했던 것이다. 낭만적인 사랑, 결혼에 이른 사랑, 나는 가끔 그 사진을 보면서 미소 짓는다. 어렸을 때의 끔찍한 네이팜탄 화상흉터 때문에 그 어떤 남자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 기억하는가? 그 생각은 틀렸었다. 토안과 나는 극적인 사랑에 빠졌다....

  몇년 전 나는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베트남전 퇴역군인 기념관에 초대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수많은 전사자들의 이름을 보았다. ‘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서 죽어야만 했는가?’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왜 당신들은 고통을 받아야 했나?’하고 나는 많은 미국 퇴역군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군중 속에서 갑자기 나와서 자신을 소개했다. ‘존 플러머’라는 이름의 그 퇴역군인은 내가 화상을 입던 바로 그날, 우리 마을인 트랑방 공격계획에 참여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무고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엄청난 양의 네이팜탄을 마구 투하한 자기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며 또 그때부터 자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고 나도 그를 진심으로 용서해주었다... 그도 나와 같은 전쟁의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당시 헬리콥터의 기관총 사수였던 마이크도 그후부터 끔찍한 악몽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말하는 내내 그는 울었다. "지금까지 줄곧 그 사진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직접 만나고 또 당신이 저를 용서해 주시다니요? 정말 꿈만 같은 날입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런 특별한 순간을 많이 경험한다. 모두가 사랑의 순간들이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신의 피조물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그녀는 전세계를 순회하며 “앞으로는 저를 전쟁의 공포나 상징으로 기억하지 말아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저는 모든 사람을 그분안에서 진심으로 용서했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제게 ‘행복’과 ‘사랑’이 보였습니다. 이미 제게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지만, 그 의미는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고통을 저의 보호막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은 저를 겸손하게 만들고 제게 주어진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비록 쓰라린 상처는 입었지만 무언가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지난 세월 동안 강해진다는 것, 희망, 진정한 용서 그리고 감사함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예, 저 역시 ‘왜 하필 제가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는가?’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습니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고 저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지요. 제가 화를 내는 것은 정당한 권리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화가 제 마음속에 완전히 자리잡아 제 삶을 파괴하는 것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수들을 용서를 했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라고 강연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킴 푹은 더 이상 비극의 베트남 소녀가 아니라 평화운동가, 유엔친선대사, 아동복지 운동가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한편 전세계를 돌며 화상환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강연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베트남 전쟁의 한 가운데서 목숨을 걸고 전쟁의 참사사진들 특히 킴 푹 소녀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린 닉 우트 사진기자와 또 화상치료를 위해 17번의 힘든 피부이식수술을 잘 견디고 또 자신에게 네이팜탄을 투하한 미군들을 진심으로 용서하며 전세계에 지금도 용서와 평화를 전하고 있는 킴 푹씨야말로 ‘평화의 사도’라고 확신하며 힘든 일상생활 속에서도 신문, 방송의 뉴스를 통해 ‘베트남을 방문하여 봉사하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지금 아시아에서 열심히 사랑의 봉사를 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여성 크리스티나 노블씨를 그린 영화 ‘노블’을 소개합니다.


                                      <영화 ‘노블’>

  베트남 전쟁이 종료된 지 14년이 지난 1989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 여성인 ‘크리스티나 노블’이 갑자기 과거의 순탄치 않은 삶을 뒤로 한 채 베트남의 호치민으로 홀연히 떠난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베트남에 도착했지만, 정작 마주한 것은 희망이 아닌 절망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해맑은 미소를 지어야 할 아이들의 얼굴에는 온갖 빈곤과 두려움, 미군의 고엽제후유증인 각종 질병들로 그늘져 있었고 특히 길거리 아이들이 아동성매매와 온갖 노동착취를 당하는 현실에 경악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아이들에게서 과거 자신의 불우했던 모습을 발견하고 드디어 길거리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런 그녀는 다음과 같은 아픈 과거가 있었다.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또 척박한 땅 아일랜드의 가난한 노동자인 아빠는 알콜중독자이며 약한 엄마는 늘 병을 앓고 있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3남매중 장녀였던 크리스티나는 불우한 환경속에서도 늘 노래를 좋아하고 또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가 어릴 때 엄마가 병으로 갑자기 죽고 알콜중독자이자 무책임한 아빠는 아이들을 방치하자 3남매는 정부당국에 의해 뿔뿔이 흩어져 입양되는데 그녀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양육된다. 하지만 나이가 차서 보육원을 나와 일을 하다 동네 부랑자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임신하여 다시 보육원에 돌아왔지만 그녀의 아이 톰마저 그녀처럼 어느 가정에 강제 입양된다. 그후 그녀는 친구의 소개로 한 청년을 만나 여러 아이들을 낳았지만 남편의 외도와 폭력을 견디지 못해 아이들을 데리고 가출을 한다. 그런데 그녀는 어릴 때마다 어려움에 처하면 동네 성당을 찾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울면서 항의를 했었고 또 기도중에 그 응답을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동안 신문이나 TV 뉴스에서 간간이 봤던 베트남전의 참혹한 영상이 예수님의 응답으로 들려왔고 결국 그녀는 험난한 베트남행을 소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주: 이 영화속 주인공인 ‘크리스티나 노블’은 베트남에 어린이들을 위한 구호재단을 설립하고 구호활동을 펼친 실제인물이다. 그녀는 70만 명이 넘는 불우한 아이들과 그들의 가정에 안전과 교육, 그리고 건강시설을 제공해주었으며 그녀의 세 자녀 역시 지금 어머니를 도와 함께 자선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3년 대영제국 훈장, 리더스 다이제스트 영웅상, 베트남 대통령의 우정의 메달, 인도주의에 대한 알버트 슈바이처상 등을 수상했으며 아일랜드의 올해의 인물, 전세계의 가장 존경받는 여성 20인에 선정, 전세계에 영향을 준 인물 36인 후보... 등에 뽑히기도 했다.

                            <말씀에 접지하기; 마르 9, 36-37>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http://cafe.daum.net/ds0y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