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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각한 한계가 있는 우리의 자유(연중 제15주일)
   2014/07/12  9:17

심각한 한계가 있는 우리의 자유

(연중 제15주일)

마태오복음 13,10-17

 

예수님은 유다인들에게 하느님 왕국을 알쏭달쏭한 비유로 말씀하여 그들이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구원도 받지 못하게 하셨다(마태 13,13-15). 인간의 자유에는 심각한 한계가 있다. 요나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그는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재촉하라고 명하신 야훼께 순종하지 않고 그분의 현존에서 도망갈 수 있었다(요나 1,3). 그는 고래 뱃속에까지 들어갔으나 야훼께서는 그를 살려내셨다(2,1-3). 그는 다시 심연으로 내려가서 자유를 차지한 것 같았으나(2,4) 이 심연에서도 하느님을 피하지 못했다(2,6). 야훼께서 그곳에서 요나를 살려 올리셨기 때문이다(2, 7-10). 이처럼 요나는 자기가 하느님께 불순종하는 자유를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요나의 자유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의자유도 한정된 것이다.

 

병리학적 관점에서도 인간의 자유에는 심각한 한계가 있다. 우리는 늘 어딘가에 갇혀 있고, 무엇인가에 씌어 있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사고방식, 가치관, 인생관, 버릇과 성격, 자기만의 문화적 배경, 한정된 인생체험과 지식, 선입견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처신한다. 우리는 이러한 틀 안에 갇혀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나아가서, 우리 각자 안에는 내적 힘, 억압관념, 고정관념, 열등의식 들이 있어서 살인자의 경우처럼 우리의 말과 행위를 우리의 뜻과는 달리 결정하곤 한다. 이처럼 한정된 자유 때문에 자기를 기만하거나 자기착각 속에서 살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을 행할 자유를 자주 상실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나의 한정된 자유를 예리하게 파악한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들도 심층심리를 깊이 파헤쳤다. 외디푸스(Oedipus)는 신들의 예언과는 반대로 자기 아버지를 죽이지 않으려 했으나 자기 무의식 층 속에 깔려 있는 어떤 강한 힘에 억눌려 아버지를 죽이고 말 정도로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그의 의식이 무의식과 일치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한계상황을 감안해야 인간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인간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창조주께서는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해 인류역사 안에 활동하신다. 이러한 뜻에서 하느님은 파라오(탈출 4,21; 7,3)나 헤스본의 왕 시혼(신명 2,30-35)이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그들이 당신 뜻을 거슬러 고집을 부리게 하셨다는 것이다(이사 6,9-10 = 마르 4,12). 죄악의 세력도 하느님의 절대주권에 종속된다. 하느님은 죄인들의 고집을 통해 그들을 심판하신다. 이처럼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씌어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스스로 묘혈을 파는 결정을 하고 만다. 이따금 우리가 자신을 해치는 적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자유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도 인간의 자유에는 심각한 한계가 있다고 가르쳤다. 우리는 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선 대신에 악을 저지른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 7,15.19)

 

누구나 다 강박관념이나 열등의식이나 심적인 상처를 가지고 있다. 어떤 일에 대한 강박증에 사로잡히면 행복을 잃어버린다.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도록 애써야 한다. 집착과 강박의 고통을 빨리 버릴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속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와 인류를 위해 헌신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대신 사시도록 그분을 받아들이자. 또한 서로 각별한 애정과 관용을 베풀어야 집착과 강박에서 해방되어 화해하고 사랑할 마음을 품을 수 있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서로 사랑의 힘을 실어주면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이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사랑할 힘을 받는다.

 

우리 마음속에는 사랑을 지하수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오게 하는 샘이 있다.

그 샘은 컵에 든 물처럼 마시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푸고 퍼낼수록 샘솟는 신비의 샘이다. 오직 우리가 자신의 그 샘을 푸고 퍼내지 않아 막히고 마르고 버려져 있을 따름이다.”(구상, ‘인정 이야기’)

 

물질은 쓰면 쓸수록 줄어들지만, 마음은 근육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강해지고, 쓰면 쓸수록 채워진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다 내어주었다 해서 그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자리는 더 커진다.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아오르지 않는 사랑은 끊임없이 죽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타오르는 사랑의 샘물을 아끼지 말고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끊임없이 퍼내자. 그러면 씨 한 알이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비옥한 토양처럼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하찮은 집착이더라도 습관화되면 우리의 마음을 노예로 만드는 힘을 지닌다.

새는 가는 실에 매여도 날지 못한다.”

나는 내 자신에게 주의를 끌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정기적으로 깨닫고 있는가?

내가 가지고 있는 좋아하는 물건 가운데 다른 사람이 그것을 꼭 필요로 하는데도 그것을 희생하기가 힘들지 않는가? 그것이 무엇인가?

내가 하는 일 가운데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한 집착을 하나 골라서 그것이 나를 좌우하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집착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이런 경우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시는가? 사랑하기 위해 자신에게서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과연 나는 자유로운 사람인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자유인이 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할 기본 능력을 잃어버린 비참한 인간이다. 욕망의 노예, 체중의 노예, 물질적 풍요의 노예 들, 무엇인가에 묶여 있는 데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최선이다.

 

사랑은 그의 시간을 할애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그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다(E. 프롬, 사랑의 기술).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 해설(가해). 가톨릭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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