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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은 야생초가 아니라 정성껏 키워야 하는 난초 같은 것이다(대림 제4주일)
   2015/12/19  8:36

인연은 야생초가 아니라

 

정성껏 키워야 하는 난초 같은 것이다

 

                                              (대림 제4주일)

 

 

 

 

                    루카복음 1,39-45

 

 

성모님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자기 몸에 잉태하게 하신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엘리사벳을 찾아가셨다. 엘리사벳과 그의 몸속에 잉태된 세례자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찾아오신 예수님의 방문을 기뻐했다. 아기 예수님과 아기 요한의 만남은 하느님이 섭리하신 운명적인 만남이요 인연이다. 요한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성모님의 태내에 계신 아기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고 그분과 인연을 맺는 은혜를 받았다. 그는 이러한 인연 때문에 어른이 된 뒤 유다인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어 예수 메시아께서 오심을 준비하는 선구자가 되었다.

 

우리는 우연히 이 세상에 와서 어떤 숙명이나 필연에 따라 살다 사라지고 마는 존재가 아니다. 창조주 하느님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산다. 하느님은 내 삶의 기원이요 중심이며 의미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주고 우리와 동고동락하신다. 따라서 하느님은 우리의 추억에 남아 있는 존재만 돼서는 안 되고 언제나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분이 되시도록 이 인연을 계속 이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 존재의 기원을 무시하는 것이다.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과 같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사람이 있다.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이 그 사람을 향해 온 것이다. 내가 헤맬 때, 몸부림 칠 때, 달리거나 걸어갈 때 나도 당신도 서로를 향해 걸어온 것이다. 31살인 남자가 아내에게 당신을 만나려고 31년을 기다려 왔다.” 하고 고백하는 것,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하느님의 손을 내 어깨에 얹어주는 것과 같다. 사랑은 내가 내 손을 당신 어깨에 얹어 놓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사람이 더 그리워지고 사람이 최고 재산인 듯 싶다.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우리 모두는 무슨 인연으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로 너와 서로 부부로, 부모와 자녀로, 형제자매로, 친구와 이웃으로 만나게 되었는가?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어려울 때 서로 돕곤 하는가?언니가 살림을 검소하게 살아 저축한 돈으로 동생이 집을 사는 데 큰 보탬을 주었다. 동생은 무슨 인연으로 나는 이러한 언니를 두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집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면서 만남의 신비에 대해 혀를 찬다. 이처럼 인연 중에서 참 좋은 인연은 생각만 해도 힘이 나게 하는 사람, 방금 만나고 왔는데도 또 보고 싶은 사람,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생각만으로 기쁨을 주는 사람, 이런 사람과 맺은 인연이 값지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만남을 주선해주어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가꾸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신다. 그것은 하느님이 생명의 주님이심을 입증한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많이 쓰는 농담이다. 평소에 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는 이 말을 덤덤하게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는 공포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고 한다(독일 심리학자). 아이는 이 말씀에 너무나 당황하고 슬퍼하면서 정말 자기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인지 궁금해 하면서 울먹인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다.”라는 부모의 농담어린 말씀은 깊은 뜻이 있다. 사람의 만남은 신비라는 것이다. 그 아이는 부모를, 부모는 그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부모와 아이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느님이 그들을 부자관계로 결정하셨다.

 

인연의 싹은 하늘의 뜻이지만 인연을 이어주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인연은 난을 키우듯, 바람과 적당한 햇빛과 물을 줘야 하고 물을 준 다음 빨리 마르도록 통풍이 좋은 곳으로 옮겨야 하고 분갈이도 하고 거름을 주어야 한다. 인연도 사랑도 난을 키우는 것과 같다.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이웃의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어야 한다. 인연이란 그냥 내버려 두어도 저절로 자라는 야생초가 아니다. 인내를 가지고 공을 들여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 포기 난초와 같다고 하겠다. 인연은 아이를 키우듯 마음을 다해 정성과 사랑을 다 쏟아 부어야 유지된다. 부부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고독하게 살 각오를 하고 끊임없이 서로 적응하고 협상해야 한다. 친구의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며 대신 짐을 져주어야 한다. 이처럼 인연을 끊임없이 갈무리하고 보호하면 그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생명이 넘쳐흐르는 사진이 되어 이미 죽은 그를 내 곁에 있게 하는 위력이 있다. 이와 반대로, 인연을 가꾸지 않으면 그 사진은 이미 빛바랜 종이, 생명이 없는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불가 용어에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무진장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사람이나 일, 물건과의 만남도, 또한 깨달음과의 만남도 그 때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혹은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도,시절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날 수 없고, 손에 넣을 수 없다. 만나고 싶지 않아도, 가지고 싶지 않아도, 시절을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 헤어짐도 마찬가지다. 헤어지는 것은 인연이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재물이든 내 손 안에서 영원히 머무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재물 때문에 속상해 하거나 인간관계 때문에 섭섭해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시절인연이라 해서 그냥 내버려두면 없어지거나 악연으로 바뀌기 쉽다. 한번 맺은 인연 좋은 인연으로 살아가도록 끊임없이 애써야 한다.

 

한국 수필문학의 거장 피천득 선생은 인연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줄 알지 못한다. 보통 사람은 인연인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한다.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날마다 일어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 사람과 인연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인연으로 엮여 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큰 만남이라도 작기도 하고 작은 만남이라도 크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큰 만남,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한 저명인사를 만나려고 애쓴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 이웃, 친구와 만남이 큰 의미가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작은 만남이라도 큰 인연으로 여기고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을 이 작은 만남에 쏟아 부어야 하겠다.

 

나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라. 그래야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다.”

 

서로 만나서는 안 되는 경우는 악연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사우와 야곱은 서로 악연이었다. 무슨 악연으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 그를 만나 이렇게 가슴앓이를 하고 울어야 하는가? 끊을 수 없는 악연을 어떻게 감당할까? 어떤 스님은 그 해결책을 이렇게 제시했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마음이 그곳에 딱 머물러 집착하게 되면 그때부터 분별의 괴로움은 시작된다인연 따라 마음을 일으키고, 인연 따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집착만은 놓아야 한다.”(法頂 스님) 우리는 집착을 버리는 것만으로는 악연을 끊을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집착이 없는 사랑은 미완성이다. 참사랑은 나의 온 실존을 다해 그에게 몰입하는 행위다. 악연을 끊을 수 있는 힘은 헌신적인 사랑에서 나온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 전에는 그분과 원수지간이었다. 그분의 제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분의 교회를 파괴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 예수님과 악연을 맺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기적적으로 그에게 나타나 이 악연을 좋은 인연으로 바꾸어주셨다. 그제야 바오로는 하느님이 자기를 어머니의 태 안에서 이미 선택하여 사도로 부르셨음을 깨달았다(갈라 1,15-16). 그는 하느님이 자기를 어머니 태 안에서부터 복음 선포자로 예정하신 것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는 예수님과 맺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복음을 선포하다가 참수형을 받았다. 이는 전 인류가 예수님과 운명을 같이하여 좋은 인연을 맺고 하느님의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도 이웃과 맺은 악연을 끊으려면 바오로 사도와 악연을 사랑의 힘으로 끊고 좋은 인연으로 바꾸신 예수님을 닮으려 애써야 하겠다. 악연을 좋은 인연으로 바꾸는 방법은 끊임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좋은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막말을 삼가야 한다. 함께 마셨던 우물물에 이별한다고 해서 침을 뱉지 않아야 한다. 그가 내게 사랑을 철회한다고 해도 쉽게 그를 잊어버리거나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인연, 내 보기가 역겹다고 미련 없이 떠나가도 나만은 한결같이 그의 행복을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인연을 살리는 사람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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