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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은 공감능력을 키우는 데서 시작한다(부활 제5주일)
   2012/05/03  10:36

사랑은 공감능력을 키우는 데서 시작한다

 

(부활 제5주일)

 

 

요한복음 15,1-8.

 

           영국 제약회사에서 낸 통계로,  남편이 감기나 몸살에 걸리면 아내들은 짧은 기간 동정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들 중 절반은 하루 종일 방에 들어 누워 정말 성가시겠네라거나 귀찮아 죽겠다. 빨리 낫지 않고 뭐하는 거야하고 성가셔 한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남편들은 대다수가 감기로 앓아누운 아내에게 공감과 동정을 느끼고 아내 대신 설거지나 청소 들 가사를 맡으려 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사람답게 사는 데 가장 중요한 능력은 공감능력이다. 이웃이 아프거나 우는 모습을 보면 그냥 무조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는 사람, 이웃이 기뻐하고 웃는 모습을 보면 그냥 무조건 자기도 기뻐하고 웃는 사람이 공감능력이 크고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처럼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감정이입이 풍부한 사람이 행복하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

 

 

예수님은 죄와 영원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어 우리와 운명을 같이 하셨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병들고, 굶주리고, 저버림 받고, 억압당하고, 정신질환을 앓고, 어둠 속을 해매는 이들로 둘러싸여 그들을 돕고 구원의 빛을 비추며 사셨다. 슬퍼하는 사람, 우는 사람,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외딴 곳이나 산 위로 올라가서 하느님 아버지와 대화하며 아버지의 구원계획에 공감하고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하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공감능력이 뛰어나신 분이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하느님 아버지와 이웃과 공감대를 만들어 아버지와 이웃을 사랑하려고 신자가 되었다. 우리의 생활원칙은 날마다 예수님의 계명을 마음속에 품고 예수님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요한 15,9-10). 그래야 참된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하나 되어 영생이라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맺은 풍성한 열매를 우리의 복음선포를 통해 사람들에게 베푸신다(12, 24). 이 제자직분을 이행하는 것이 많은 열매를 맺고 영생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15,8). 하느님은 내세신앙도 모르고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도 없이 살고 있는 비신자 이웃에게 내세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신다. 우리가 유용한 도구가 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만들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 되면 그들이 우리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공감능력은 우리가 이웃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그들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생긴다. 이웃은 공감능력이 많은 우리가 자기들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고 자기들도 우리를 이해하려는 동기를 가지게 된다. 이처럼 이웃의 중요함을 인정해 주어야 이웃이 우리를 사랑할만한 존재로 여기고 우리 주위로 모여들 것이다. 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15,9-10)은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의 기본 자질이다. 그러나 전교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의 영생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가 되어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서 잘려나가 영원한 파멸에 떨어지고 만다.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신하거나 예수님의 신비를 잘못 알고 있는 자들(1요한 2,18-19)과 같은 인간이 되고 만다. 교리도 잘 모르고 언변도 좋지 않아 전교를 못한다는 말은 공감능력을 키우지 않으려는 자의 구차한 변명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가난은 자기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여기는 것이다(마더 데레사). 사랑을 거절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처럼 참된 포도나무에 붙어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려면 전교를 해야 한다. 전교는 죽는 순간까지 해야 하는, 자나 깨나 잊어서는 안 되는 과업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 10,32-33).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당신이 계속 페달을 밟는 한 당신은 넘어질 염려가 없듯이, 전교하면 심판받을 염려는 없다. 그러나 전교하지 않으면 자전거 페달을 밟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에게서 떨어져나가 넘어지고 만다.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이 되어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웃과 공감대를 형성하여 이웃의 구원을 위해 애쓰라고 미사 때마다 우리를 파견하신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끝까지 이행하는 것이다. 변함없는 의무감은 훌륭한 인격자와 신앙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이다. 우리의 기쁨과 행복은 이웃의 슬픔과 기쁨을 알아내고 공감과 소통을 할 때 생긴다.

 

 

<1255-6일 효목, 박영식 야고보 신부>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 2. 요한복음과 바오로 사도 서간과 요한 묵시록의 핵심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124월 출간예정

 

-----, 오늘 읽는 요한 묵시록. 바오로딸 2012226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