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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러운 사람, 깨끗한 사람(연중 제22주일)
   2012/09/15  19:40

더러운 사람, 깨끗한 사람(연중 제22주일)

마르코복음 7,1-8.14-15.21-23

 

1979년 7월 필자가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에 유학을 가서 한 여름에 고고학 발굴에 참여했을 때 이런 일을 겪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발굴 장소(tell)로 가서 호미로 파기 시작했다. 오후 1시가 되면 너무 더워 작업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호미로 땅을 파는 이유는 땅 속에 문화재가 감추어져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침식사를 위해 본부로 왔다가 다시 작업장으로 가서 12시까지 발굴을 계속하고 점심을 먹은 뒤 버스로 여러 성지를 방문하곤 했다. 두 주간 발굴 결과 많은 유물들을 파냈는데 부서진 도자기 조각들을 조립해서 원형을 복원하고 무늬와 색상 들을 보고 다른 곳에서 발굴된 것들과 비교해서 연대를 측정하는 법을 배웠다. 또한 가옥 구조를 살펴 그 당시 부엌, 거실, 침실 들이 어떠했는지를 알아내는 공부를 했다. 발굴 결과 다윗 임금 시대의 유물들임을 밝혀냈다.

 

점심시간이 가까이 오면 목이 타고 배도 고프고 지쳐서 모든 학생들이 선착순으로 달려와서 냉장고를 뒤졌다. 필자는 동작이 느리기도 하지만 신부라는 체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점잖게 굴다가 냉장고 속에 있는 냉수를 다 빼앗기고 우유 팩 하나를 간신히 손에 넣었다. 그날 점심은 뜨거운 통닭이었다. 닭고기 한 조각을 입에 물고 우유 한 모금 마시고 냠냠거리는데 발굴 팀 여자 조교가 와서 우유를 빼앗아 가버렸다. “어머니 젖을 끓이지 말라”는 이스라엘 법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조교는 꼭두새벽에 앙칼진 목소리로 곤히 잠든 우리를 깨워 발굴 노동을 시킨 악역을 맡은 자매이다. 어머니 젖도 아니라 소젖이요 끓이지도 않았다고 변명했으나 그 조교는 우유를 뜨거운 닭고기와 함께 먹는 것이 곧 요리하는 것과 같다고 대답했다. 이 규정은 유다인이 아닌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하자 “당신은 지금 이스라엘 영토 안에 있지 않느냐?” 하고 되물었다. 발굴에 참여하려고 200달러나 내고 발가락이 뭉개질 정도로 혹사하고 있는데, 냉수라도 좀 넉넉히 준비해두지 않고 …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깨끗한 마음은 어머니 젖을 끓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필요를 눈여겨보고 배려하고 보살펴주는 것인데!

 

예수님은 유다인들의 금기식품에 대한 규정(kosher)(신명 14장; 레위 11-15장)을 폐지하고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선언하셨다(마르 7,18. 19). 사람의 입속으로 들어간 음식은 그의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화장실로 빠져 나가버리고 만다. 이와 반대로,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죄, 즉 악한 생각,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행위, 악행, 사기, 음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가르치셨다(7,20-21).

 

예수님은 거룩한 사람이 되려면 하느님과 하나 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우리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야 우리의 온 실존이 깨끗해진다. 물욕이나 이기심이나 이해타산으로 때 묻지 않고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이라야 하느님과 이웃과 참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기적 타산을 모르는 깨끗한 마음속에 사랑과 행복이 깃든다(1티모 1,5; 1베드 1,22). 타산을 밝히는 사람은 사랑할 기본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이런 뜻에서 나는 깨끗한 사람인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려면 전적인 투신이 필요하다. 마음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계명에 묶어둬야 바다같이 넓고 하늘처럼 높은 마음을 지닐 수 있다. 그래야 깨끗한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되고 구원받고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사람은 이기심과 물욕에 사로잡힌 자이다. 자기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거들떠보지 않는 자가 더러운 사람이요 죄인이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습니다.”(1베드 4,8).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장미꽃의 가시도 안 보인다(독일 속담).

“사랑이 적으면 적을수록 과오도 그만큼 크다”(이탈리아 속담).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공관복음을 어떻게 해설할까. 가톨릭출판사 2012년

-----, 마르코 복음 해설. 가톨릭출판사 2012년

-----, 오늘 읽는 요한 묵시록. 바오로딸 2012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11년 3월 초판 3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역사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12년 재판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마르코복음, 마태오복음, 루카복음, 사도행전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09년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요한복음과 바오로 사도 서간과 요한 묵시록의 핵심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