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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주님 공현 대축일)
   2016/01/02  8:28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오복음 2,1-12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 박사는 유다인들과는 달리 성경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다(마태 2,1-12). 세 박사는 하느님이 죄와 죽음으로 일관되는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주시리라는 희망을 이웃 유다인들에게 배웠던 것 같다. 박사들은 이 희망에 이끌려 베들레헴까지 먼 길을 와서 예수 메시아를 뵙고 희망을 실현했다.

 

우리도 박사들처럼 끊임없이 인생의 의미와 보람과 성취, 하느님의 생명을 찾아 순례의 길을 가는 나그네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으리라는 희망의 힘으로 오늘의 고난을 이겨내고 있다. 병자가 치유되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대수술의 고통을 마다하지 않듯이, 희망은 명약 중의 명약이요 가장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다. 희망을 포기하면 약도 의사도 소용없고 바로 죽음의 길로 치닫는다.

 

꿈을 가져라. 그러면 어려운 현실을 이길 수 있다.”(R.M. 릴케)

 

희망은 인간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믿음이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헬렌 켈러)

 

없어지고 마는 사람이나 무엇을 희망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망하고 만다. 사람에게 희망을 거는 사람은 그 사람이 변하거나 죽어버리면 희망이 산산조각난다. 불완전 존재인 사람에게는 절대로 희망을 걸지 말자. 또한 부귀영화가 희망인 사람은 그것의 노예가 되어 사람구실을 하지 못하거나 소멸하고 마는 부귀영화와 함께 사라지고 만다. 이와 달리, 우리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열정과 사랑과 기쁨이라는 하느님의 생명, 사랑, 열정, 기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희망으로 삼는다. 예수님이 고난과 좌절과 배신이라는 천신만고를 당하시고 우리의 희망이 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다 당신의 복음과 하느님의 생명을 배척하여 당신을 원수로 간주하고 죽이려 하자 당신의 존재이유가 무시당하는 것을 체험하셨다. 설상가상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 사랑하는 아버지를 영영 뵙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셨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참혹한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 아버지와 전 인류를 열렬히 사랑하다 돌아가셨다. 인류를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며 무한한 기쁨 속에서 돌아가셨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배신 가운데서 자기의 존재이유와 무의미에 대한 회의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과 열정과 기쁨을 지키신 예수님을 부활시켜 사랑과 열정과 기쁨을 베푸는 주님이 되게 하셨다. 이처럼 하느님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창조하셨다. 예수님을 죽은 뒤 세계까지 비추는 희망의 등불을 밝히고 우리를 인도하는 구세주로 만드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생명인 사랑, 열정, 기쁨을 희망하는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하느님의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은 현세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예수님처럼 평생 기쁘게 살다가 죽음의 고통 속에서 기쁘게 생을 마감하고 하느님과 하나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부귀영화를 찾지 않고 부귀영화보다 더 근원적인 복을 주는 사랑, 열정, 기쁨을 희망하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을 이루기까지 불확실성이나 무의미나 존재이유에 대한 회의와 싸워 이기는 모험을 각오해야 한다. 희망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신이 서지 않는데도 무조건 믿고 받아들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고해苦海이듯, 희망도 고해 속에서 찾아내는 보물과 같은 것이다. 희망의 토대이신 예수님과 하나 되는 사람만이 캐낼 수 있는 보물이다. 그는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절망을 이기고 일어선다.

 

절망도 꼭 희망을 내포하고 있다. 갈등에도 화해가 깃들어 있다. 답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다. 절망 속에서 절망밖에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망 속에 희망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 불행 속에 행운을, 갈등 속에 화해를, 절망 속에 희망을 찾아내는 사람이 승리자이다. 그러기 위해 모든 희망을 실현해주시는 하느님께 기도해야 하겠다.

 

불에 피운 향이 인간의 생명을 상쾌하게 하는 것처럼, 기도는 인간의 마음에 희망을 북돋아 준다.”(괴테)

 

예수님을 닮는 것을 희망으로 삼는 사람은 절망 가운데 희망을 만든다. 아이들의 희망은 부모가 심어주는 것이다. 부모가 그들이 잘 할 때 칭찬해주고 기뻐해 주어야 아이들이 집념과 의욕과 희망을 품게 된다. 그래서 덴마크의 철학자요 신학자이며 기독교 실존주의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자기 아이가 부나 권력 대신 열정과 희망을 발견하는 생생한 눈을 달라고 기도하겠다고 했다. 부나 권력은 시들어버리지만, 열정과 생생한 눈은 시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속해 있는 가정이나 공동체나 교구나 나라나 국제 사회가 아무런 희망이나 비전을 찾아낼 수 없을 만큼 형편없고 비참해 보일 수 있다.이런 처지에서도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상황을 개선하고 희망을 만들려고 애써야 하겠다. 희망과 비전을 주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뜻에서 내 존재가 상대방에게 성공, 행복과 건강의 비법이 되는 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요 꿈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꿈은 사랑, 열정, 기쁨을 지켜야 이루어진다.

 

잘 웃는 친구는 희망을, 잘 웃는 아내나 남편은 행복을 가져다준다.아무런 자본이 필요 없는 미소를 짓는 사람도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만들어준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나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외 없이 도움을 줄 만큼 열정적으로 살면 보람과 성취를 느끼고 기쁨을 누린다.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은 폐허나 오막살이 집일지라도 싱그러운 향내를 풍기게 한다.”(G. 플로베르)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태양이 저녁이 되면 석양이 물든 지평선으로 지지만, 아침이 되면 다시 떠오른다. 태양은 결코 이 세상을 어둠이 지배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태양은 밝음을 주고 생명을 주고 따스함을 준다.태양이 있는 한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희망이 곧 태양이다.”(헤밍웨이)

 

진리와 희망의 태양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언제나 희망을 선물로 받는다.

 

희망만 있으면 행복의 싹은 그곳에서 움튼다.”(괴테)

 

 

아름다운 희망이 여기 매장되었다.”

하는 유언을 남긴 프란츠 슈베르트의 희망은 실현되었다. 생전에는 그의 음악이 빛을 보지 못해 실패와 실망 속에서 31살에 요절하며 쓴 그 유언 속의 희망은 그의 음악을 통해 실현되었다. 목발 짚은 겨울 나그네가 걸어가는 황야에는 봄은 찾아왔다. 우리는 그가 작곡한 미사곡을 부를 때마다 그가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를 찬미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희망도 없다. 단테가 쓴 신곡의 지옥, 하느님의 현존이 없는 지옥문 앞에 여기서부터 희망을 버리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2016년 한 해를 현세의 부귀영화에 집착하느라 허송세월하지 말고 사랑, 열정, 기쁨으로 수놓자.

 

 

 

 

 

                      잘 읽히는 책  

 

판매처: 가톨릭출판사, 바오로딸, 성바오로

박영식, 말씀의 등불 다해. 주일 복음 묵상?해설(다해). 가톨릭출판사(으뜸사랑) 2012(재판).

-----, 마르코 복음 해설. 도서출판 으뜸사랑 2012년 개정 초판

-----, 마태오 복음 해설. 도서출판 으뜸사랑 2013년 개정초판

-----, 루카 복음(예수의 유년사). -루카복음 1-2. 입문, 본문 번역, 해설도서 출판 으뜸사랑 2013

-----, 루카복음. 루카복음 3-24장 해설. 으뜸사랑 2013

-----, 오늘 읽는 요한 묵시록. 바오로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