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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어쩌자고 방탄차를 거절하십니까?"(연중 제19주일)
   2014/08/09  10:34

교황님, 어쩌자고 방탄차를 거절하십니까?”

(연중 제19주일)

마태오복음 14,22-33

 

프란치스코 1세 교황이 816일 서울 광화문에서 124위 시복미사를 올린다. 이 미사에 참석하는 모든 신자들은 그분의 신변안전을 위해 플라스틱 물병, 유리, , 금속류 그릇을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찰 두 명이 버스에 신자들과 동승하기로 했다. 또한 정부는 광화문 광장에 있는 모든 건물 옥상에 저격병을 배치하기로 했단다. 교황의 경호를 책임 맡은 이들이 교황에게 방탄조끼와 방탄차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교황청 고위 성직자는 그러면 교황님이 한국에 안 가실 걸요.” 하고 대답했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첫 해에 이미 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정평이 났다. 취임사에서 바티칸에서 일하는 고위성직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가난한 삶과 겸손한 봉사자의 자세로 회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피아의 본산지 시칠리아에 가서는 회개하지 않는 마피아를 교회에서 내쫓아낸다고 선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들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이고 거리감 없이 대중들에게 다가선다. 취임 후 처음 맞이한 세족례 때는 감옥에 갇혀 있는 이슬람교 신자인 딸아이의 발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친구를 하여 교회 안 많은 보수주의자들에게 빈축과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들은 교황으로서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했다. 그는 이처럼 교회 안팎으로 적이 많다. 가는 데마다 암살자들이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현 교황은 보호막을 치지도 않고 방탄조끼와 방탄유리와 방탄차를 거절한다. 방탄차 대신에 저렴한 쏘울 차를 타기로 했단다.

 

죄인들을 더럽다고 멀리하거나 방탄조끼, 방탄유리, 방탄차를 사용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너무나 기괴하고 웃음이 나오는 모습이다. 예수님은 하루 종일 병든 이, 가난한 이, 우는 이, 감옥에 갇힌 죄인, 정신질환자와 함께 살며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그들의 성화를 귀담아 들어주고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며 구원의 빛을 뿌리신다. 윤락여성과 강도들의 친구요 먹보요 술꾼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과 인격의 존엄성을 지키신다. 원수들로 둘러싸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약점을 찾는 데 혈안이 된 자들의 눈초리 앞에 온전히 노출된 그리스도의 삶, 사생활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을 만큼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 삶을 사신다. 나아가서, 그리스도께서는 당대 집권층의 기득권과 권세를 위태롭게 한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총알받이보다 더 참혹한 죽음을 당하셨다. 총알받이가 되면 별다른 고통이 없이 한 순간에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단말마 고통,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고통의 시간을 계속 연장해가며 당하셨다. 사형을 집행하는 군인 하나가 해면에 포도주를 적셔 입가에 올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진통제를 단호히 거절하셨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여 참혹한 죽음을 겪는 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확신하셨기 때문에 철저하게 고통을 당하기로 하셨던 것이다. 그토록 사랑으로 흘러넘치는 예수님의 마음은 고통 속에서 한없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십자가 위에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최상 행복과 기쁨을 누리셨다. 십자가 위에서 얇은 속옷 하나 걸치지 못하고 알몸으로 당신의 뜻을 깡그리 죽이고 오로지 아버지의 뜻만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이 예수님을, 아니 하느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이다. 이게 도대체 가능한 일인가? 피조물이 자기를 만드신 창조주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느님을 죽일 수 없듯, 예수님도 총을 맞지 않으신다. 부활하신 주님이시니까.

 

오늘 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죽음과 파멸을 상징하는 바닷물 위, 사납게 몰아치는 바람을 거슬러 여유자작하게 걸어가셨다. 이 바다는 세월호 침몰로 304명이나 되는 귀한 목숨들이 여야 정치인들과 공권력을 휘두르는 자들과 언론인들의 사리사욕을 채워주는 사이비 종교인의 농간으로 한 사람도 살지 못하고 다 빠져 죽은 그 차디찬 바닷물 속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이러한 바닷물 속에 빠져 돌아가셨으나 부활하여 바닷물 위를 걸어가시는 주님으로 등극하셨다. 믿음이 약해 물속으로 빠져 내려가 아우성을 치는 베드로를 다정한 손길로 건져 올리시는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모든 사리사욕과 불의와 죽음과 파멸에서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임하신다.

 

교황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것은 곧 그가 총알 앞에서 방탄조끼를 입고 제 몸을 사리고 안전한 곳으로 숨으려 하지 않는 이유다. 아프리카나 남미 오지에서 총알뿐만 아니라 전염병의 위험 속에서 불철주야 가난한 이, 병든 이를 위해 일하는 많은 수녀들과 신부들도 있는데 명색이 교황이라는 사람이 제 목숨만 챙기려 든다면 졸장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연세가 78세나 될 만큼 살만큼 산 사람이 작은 구슬만 한 총알을 두려워한다면 가소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교황이 서슴없이 방탄차에서 내려 암살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인파 속으로 미소 지으며 뚜벅뚜벅 들어가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을 사리는 것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짓이요 영생을 거절하는 우둔한 짓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총구에서 나오는 금속 덩어리만 총알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총알이 우리를 향해 날아온다. 우리는 거기에 맞고, 피 흘리고, 상처 입고, 고통스러워 절규한다. 이 총알은 불평, 비난, 원망, 욕지거리, 단죄, 자기 뜻을 따르지 않는 자를 다 죄인으로 취급하는 자기중심주의,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고 잘 못되면 손뼉을 치며 웃는 소리, 이 모든 것이 총알이다. 이런 총알을 맞지 않으려고 방탄복, 방탄유리, 방탄차를 찾는다. 방탄 조끼를 입고, 그 위에 또 하나 더 껴입고, 그 위에 또 껴입는다. 그런데도 총알이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몰라 덜덜 떨면서 살고 있다. 총알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는 없다. 총알을 피하려 하지 말고 과감하게 총알을 맞아야 총알의 힘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하느님과 이웃의 기쁨을 위해 자기를 버리면 그 힘을 없애버릴 수 있다. 우리는 신비스럽게도 그 총알 덕분에 그리스도를 닮아 영생과 영복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자기의 안전에 집착하지 말고 이웃의 안전을, 나에게 총을 쏘아대는 사람들의 행복과 구원을 걱정해야 한다. 그래야 총알이 나의 구원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방탄조끼, 방탄유리, 방탄 철갑 뒤로 몸을 숨기지 말자. 오히려 아집과 독선과 이기심과 무사안일주의의 방탄 조끼를 벗고, 방탄 차 밖으로 나아가 십자가를 찾아 원수들을 사랑하자. 십자가를 찾은 사람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기중심주의를 죽이고 이미 영생을 사는 사람이다. 도망가서 잘 살고 있는 자를 죽은 시체로 위장하는 거짓을 폭로하고 불의와 독선과 독재를 타파하자. 우리도 방탄조끼, 방탄유리, 방탄철갑을 벗어 던지자. 그것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시는 그리스도의 대리인 교황을 환영하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가 고난과 시련에 직면하여 고난을

이겨내는 아이가 되게 해주소서.

평탄한 삶보다 고난을 주시되

이 고난을 이겨낼 힘을 주소서.”

(아들을 위한 D. MacArthur 장군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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