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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것(부활 제5주일)
   2015/05/02  9:30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것(부활 제5주일)

 

요한복음 15,1-8

 

생텍쥐페리는 죽기 1년 전 194346일 뉴욕에 머무르며 발표한 어린 왕자를 발간했다. 이 작은 책은 오늘 120개 언어로 번역된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 되었다. 한국에도 30종이 넘는 번역본이 나왔다. 성경 다음으로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많이 읽히는 어린 왕자는 우리의 소중한 친구이자 세상을 의미 있게 살아가고 남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기술을 가르쳐준다.

 

인간은 상호관계로 묶어지는 매듭이요, 거미줄이며, 그물이다.”(생텍쥐페리)

내 존재의 의미는 다른 존재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 정해진다. 아무개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 형수, 친구, 직장 동료, 스승, 제자, 이웃 등, 내 존재를 지탱시키는 인간관계는 얽히고설킨 거미줄처럼 복잡다단하다. 이 모든 인간관계에 충실한 사람이 대인이요 덕을 갖춘 사람이다. 가족관계도 단순한 것 같지만, 부부와 딸 하나로 이루어진 관계도 부부관계, 부녀관계, 모녀관계라는 세 가지 관계로 구성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타산에 따라 나를 떠나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만이 끝까지 내 곁에 남아 있어준다.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말이 떠오른다.

 

무엇인가를 길들이지 않고서는 그걸 정말로 알 수 없어. 사람들은 이젠 뭔가를 진정으로 알게 될 시간이 없어졌어. 그들은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물건을 가게에서 살 뿐이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이제 그들은 친구가 없는 거지. 친구를 가지고 싶다면 나를 길들여줘.’ 널 길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하고 어린 왕자가 물었다. ‘아주 참을성이 많아야 돼. 우선 넌 나와 좀 떨어져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는 거야. 난 곁눈질로 널 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씨앗이거든. 그러면서 날마다 너는 조금씩 더 가까이 앉으면 돼’.”

 

친구와 영원한 우정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고 서로 끊임없이 적응하고 타협하고 순종해야 얻을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사랑은 이웃을 이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는 존재, 나보다 더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고, 그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그를 마음속에 이상으로 간직하는 것이다. 사랑은 인내를 가지고 조금씩 서로 길들이는 것이다. 예컨대 약속한 것을 지키고,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함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주고,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고, 그를 위해 정성들여 화장하고, 그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그가 잘 쓰는 말을 하고, 그의 단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랑에 따르는 수고와 아픔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서로 길들이는 일은 이웃의 가치관, 사고방식,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공동의 관심사를 찾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서로 길들이는 일은 사소한 것이라도 배려하고, 이해하고,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 서로 길들인 만큼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갈등이나 불협화음이 생기면 몸도 마음도 병들고 살 힘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아파하고 슬퍼하고, 방황하고 좌절하며 누군가에게 분노하기도 하고 세상을 탓하며 울분을 토해내기도 한다. ‘어린 왕자는 만난을 무릅쓰고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는 지혜를 가르쳐준다.

"여우가 말했다. ‘안녕, 여기 내 비밀이 있어. 그건 간단해. 마음으로 보면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으로 보아야 보인다. 예컨대 순수한 것,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 사랑, 책 속의 진리, 음악 같은 것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임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애쓰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의 사랑과 깊이 있는 인격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질투하고 복수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내일이면 죽는다고 생각해보라.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나쁜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고 그가 지닌 장점들이 주마등처럼 드러날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법도 그분께 길들여져지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죽이고 그분께 나의 감성, 이성, 의지, 생명, 온 실존을 다 바쳐야 한다(신명 6,4-9).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힘으로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 붙어 있는 가지로서 그분과 떼어놓을 수 없이 하나 된다. 우리는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고 생명을 베풂으로써 우리 마음속에 현존하신다. 예수님이 보고 싶어지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때 참사랑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그리움에 사무쳐 가슴에 메어 우는 사람이 참사랑을 한다. 예수님이 생각나면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내 인상이 밝아지는 것이 사랑이 주는 혜택이다.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면 한없이 행복해지고, 그분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마음이 생기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초월하는 것이다. 의 아픔이 내 아픔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그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분을 존경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조건 실천해야 비로소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가 우리의 성격, 사고방식, 가치관을 송두리째 하느님과 예수님의 것으로 바꾸어 준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를 존중하고, 그를 위해 책임을 다 하고, 그를 알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다.”(E. 프롬)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닮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분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뜻이다. 이와 반대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들은 최후만찬에 와 있는 유다처럼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배신하는 자들을 상징한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관계를 끊어 잘려 나간 가지들은 불에 던져져 타 버리고 마는 영원한 죽음을 자초한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과 그를 닮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교제하는 친구와 비슷하다.”(에우리피데스).

 

그 사람을 모르거든 그의 친구를 보라. 사람은 서로 마음 맞는 사람끼리 벗하기 때문이다.”(메난드로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나 인품은 그가 사귀는 친구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알려면 친구를 바라보면 된다. 사람은 유유상종하면서 살기 때문에 서로 성격이나 인격형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친구란 무엇인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아리스토텔레스)

 

친구는 제2의 자신이다.”(아리스토텔레스)

 

예수님을 닮고 친구를 사귀는 것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는 아무도 사랑 없이는 못 사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친구가 없다면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는 이는 자신의 마음을 잡아먹는 사람이다.”(F. Bacon)

 

친구들과 함께 우정을 나누는 곳이 천국이다.

 

나에게 혼자 파라다이스에서 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을 것이다.”(괴테)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편애이지 참사랑이 아니다. 참사랑을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그의 마음속에 이기심이 전무해야 온전한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원수와 의인을 다 사랑하시듯,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과 모든 사람에게 길들여져야 한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것이 참사랑이요 어린 왕자의 사랑이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필요해.’라고 말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나는 네가 필요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해.’라고 말한다.”(E.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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