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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6일 목요일

[(녹)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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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4(83),10-11 참조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그리스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하느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이제는 자기 지체를 의로움에 종으로 바쳐 성화에 이르라며,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고,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신다(복음).
<이제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6,19-23
형제 여러분, 19 나는 여러분이 지닌 육의 나약성 때문에 사람들의 방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이 전에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에 종으로 넘겨 불법에 빠져 있었듯이, 이제는 자기 지체를 의로움에 종으로 바쳐 성화에 이르십시오.
20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로움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21 그때에 여러분이 지금은 부끄럽게 여기는 것들을 행하여 무슨 소득을 거두었습니까? 그러한 것들의 끝은 죽음입니다.
22 그런데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23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1-2.3.4와 6(◎ 40〔39〕,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필리 3,8-9 참조
◎ 알렐루야.
○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려고, 모든 것을 해로운 쓰레기로 여기노라.
◎ 알렐루야.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130(129),7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인자하신 주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그분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무거워집니다. 당신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백성을 구원하여 한데 모으러 오셨건만, 오히려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반대받는 표적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신” 당신의 직무를 회피하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있을 하느님의 심판이 이 불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이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임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를 피해 가려고 거짓 평화를 앞세워 죽음을 피해 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굳어 자신 안에 갇혀 버린 이 세상을 내버려 두실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직면하신 고난은 반대받는 표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분께 무관심한 것입니다. 곧 우리가 그분을 우리의 삶에서 밀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지만, 이를 통해서 우리가 그분을 영화에 나오는 감상적이거나 비극적인 주인공처럼 만나고, 우리의 기도가 일상의 갈등과 고민들을 비껴간다면, 예수님께서는 더욱 우리의 삶에서 고립되고, 신앙은 우리의 삶과 유리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삶의 모든 고통에서 도피하여 마음의 평화만을 찾기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복음의 예수님’이 아닌 ‘환상의 예수님’을 찾는 것입니다. 복음의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신 분이십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