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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1일 화요일

[(녹)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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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6(95),1.6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고, 권능과 영화가 그분 성소에 있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자애로이 이끄시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저희가 옳은 일에 힘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바오로 사도는,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겨자씨와 밀가루를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에 비길 수 있다고 하신다(복음).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8-25
형제 여러분,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0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21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26(125),1-2ㄱㄴ.2ㄷㄹ-3.4-5.6(◎ 3ㄱ)
◎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네.
○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
○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
○ 주님, 저희의 귀양살이,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1
그때에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저희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이 제물이 저희를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34(33),6 참조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의 살과 피로 저희를 기르시니,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으로, 저희가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작은 씨앗 안에서 큰 나무를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감각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있는 잠재력이 금방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에 대한 우리의 지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통계가 알려 주는 숫자나 양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은 어려운 박해 시기에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피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교회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내가 이웃과 나누는 사랑도 말이나 선물이 주는 외적인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어려운 시절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내적인 교감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하늘의 새들이 깃들만큼 크게 자랄 씨앗입니다. 보잘것없는 누룩이 밀가루 속에 들어가 온통 부풀어 오르는 그 가능성이 바로 하늘 나라의 출발입니다. 
가능성은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과 희망은 외적인 조건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대한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이 희망은 나 자신을 온전히 투신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희망으로 이미 시작되고, 우리의 투신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