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가톨릭 생활 > 신앙생활 > 매일 미사
2018년 09월 18일 화요일

[(녹)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8월2018년 09월10월
      1
2345678
9101112131415
16171819202122
23242526272829
30      
- -   
집회 36,21-22 참조
주님,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당신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하느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니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 내시자, 사람들은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며 하느님을 찬양한다(복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12-14.27-31ㄱ
형제 여러분,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14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28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29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30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00(99),1-2.3.4.5(◎ 3ㄷ 참조)
◎ 우리는 주님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 감사하며 그분 문으로 들어가라. 찬양하며 그분 앞뜰로 들어가라.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 찬미하여라. ◎
○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
루카 7,16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 알렐루야.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1-17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 제물을 너그러이 받으시어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가 드리는 이 제사가 모든 이의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36(35),8
하느님, 당신 자애가 얼마나 존귀하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당신 날개 그늘에 피신하나이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 몸과 마음을 이끄시어 저희가 제 생각대로 살지 않고 그 은총의 힘으로 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청년의 장례 행렬을 만납니다. 외아들을 잃은 홀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였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먼저 다가가시어 관에 손을 대고 말씀하십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이 한마디 말씀에 죽었던 젊은이가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얼마나 측은히 여기시는지 잘 알게 해 줍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어려움에 놓인 사람이나 좌절에 빠진 사람들의 아픔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에게 현실 세계에서 이미 구원의 의미를 느끼도록 해 주셨지요. 구원은 이 현세에서 시작되어 초월적 생명을 얻음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배고픈 이들과는 먹을 것을 함께 나누며, 아픈 이들은 낫게 해 주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정의롭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실 내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관심에 더 익숙해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일깨우십니다. “일어나라, 무관심과 무표정에서 깨어 일어나라.” 따라서 이웃들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힘이 되도록 그들의 구체적인 아픔에 다가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