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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녹)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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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대 알베르토 주교 학자 기념
시편 88(87),3 참조
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바오로 사도는 필레몬에게, 옥중에서 얻은 아들 오네시모스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여 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하신다(복음).
<그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여 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필레몬서 말씀입니다. 7-20
사랑하는 그대여, 7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대 덕분에 성도들이 마음에 생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8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큰 확신을 가지고 그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명령할 수도 있지만, 9 사랑 때문에 오히려 부탁을 하려고 합니다.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10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11 그가 전에는 그대에게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2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13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14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5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18 그가 그대에게 손실을 입혔거나 빚을 진 것이 있거든 내 앞으로 계산하십시오. 19 나 바오로가 이 말을 직접 씁니다. 내가 갚겠습니다. 그렇다고 나에게 빚을 진 덕분에 지금의 그대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20 그렇습니다, 형제여! 나는 주님 안에서 그대의 덕을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마음이 생기를 얻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46(145),6ㄷ-7.8-9ㄱ.9ㄴㄷ-10ㄱㄴ(◎ 5ㄱ)
◎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는 이!
○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 주님은 눈먼 이를 보게 하시며,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 주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나,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요한 15,5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 알렐루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그 신비를 따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23(22),1-2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성체로 힘을 얻고 감사하며 자비를 바라오니 저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성령의 힘으로 저희 삶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
하느님 나라, 천국은 모든 인간이 갈망하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예수님께 묻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에는, 율법을 준수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자신들 같은 사람들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숨겨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결코 인간이 세운 잣대에 부합하는 이들만의 소유가 될 수 없음을 밝히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오히려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으며 이 세상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 때문에 수인이 되었지만 하느님과 함께 살았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겼기에, 살면서 이미 하느님을 만난 분이었습니다. 그가 담은 하느님의 마음은 필레몬에게 자신이 아들처럼 아끼던 오네시모스를 보내는 애틋한 사랑에서 잘 드러납니다. 자신의 심장처럼 여기고, 자신 곁에 두고 시중을 들게 하고 싶었지만,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 사랑하는 형제로 보내는 마음이나, 그가 진 빚을 자신이 직접 갚아 주겠다고 약속하는 바오로 사도의 마음에는, 한 인간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감옥에 갇혔어도 바오로와 그가 사랑한 사람들 사이에는 평화롭고 사랑 넘친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살면서 내 심장과 같은 사람을 곁에 두고 있습니까?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삶에 빠져 심장처럼 아낄 만한 사람 하나 없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에서 실컷 즐기며 살다가 하느님을 만나 당혹해 하기 전에, 세상에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내 이웃을 통하여 먼저 만나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