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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 29일 화요일

[(녹) 연중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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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6(95),1.6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존귀와 위엄이 그분 앞에 있고, 권능과 영화가 그분 성소에 있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자애로이 이끄시어 사랑하시는 성자의 이름으로 저희가 옳은 일에 힘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러 오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신다(복음).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0,1-10
형제 여러분,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바로 그 실체의 모습은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예배하는 이들이 한 번 깨끗해진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3 그러한 제물로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4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5 그러한 까닭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6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제가 아뢰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40(39),2ㄱㄴ과 4ㄱㄴ.7-8ㄱㄴ.10.11(◎ 8ㄴ과 9ㄱ 참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 주님께 바라고 또 바랐더니, 나를 굽어보셨네. 새로운 노래,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내 입에 담아 주셨네. ◎
○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 당신 정의를 제 마음속에 감추어 두지 않고, 당신 진리와 구원을 이야기하며, 자애와 진실을 큰 모임에서 숨기지 않나이다. ◎
마태 11,25 참조
◎ 알렐루야.
○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 알렐루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저희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거룩하게 하시어 이 제물이 저희를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34(33),6 참조
주님께 나아가면 빛을 받으리라.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의 살과 피로 저희를 기르시니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으로 저희가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나 몰라라 하시는 것처럼 비춰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모님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외면하십니다. 이는 당신 스스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어기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어머니로 대접하지 않으실 수 있으실까요? 여기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진정한 가족이 되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시듯, 하느님의 가족이 되게 만드는 것은 핏줄이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가족을 지탱하는 힘은 그 가족 안에 흐르는 ‘뜻’에 있지, 피만 나누었다고 가족이 아닙니다. 만약 자녀라 하면서 옆집 부모의 뜻을 따른다면, 또는 부모라 하면서 옆집 자녀의 뜻만 따른다면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요? 가족은 자기 가족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의 가족이 되려면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보듯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여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모님만큼 하느님의 뜻에 “아멘.” 하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모님만큼 주님의 가족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웃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 그분의 가족으로 인정받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요한 13,34; 15,12 참조). 관계를 유지시키는 힘은 그 관계를 꿰뚫는 ‘뜻’에 있습니다.(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