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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30일 토요일

[(자) 사순 제3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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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3(102),2-3 참조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주님은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신다.
주님, 해마다 사순 시기의 재계로 파스카 성사를 준비하게 하시니 저희가 그 신비의 기쁨을 미리 맛보고 구원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호세아 예언자는,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이고,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비유를 말씀하신다(복음).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6,1-6
1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2 이틀 뒤에 우리를 살려 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어,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되리라. 3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4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5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6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51(50),3-4.18-19.20-21ㄱ(◎ 호세 6,6 참조)
◎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 주소서. ◎
○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
○ 당신의 자애로 시온을 돌보시어, 예루살렘의 성을 쌓아 주소서. 그때에 당신이 의로운 희생 제사, 제물과 번제를 즐기시리이다. ◎
시편 95(94),7.8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하느님, 저희에게 은총을 내리시어 저희가 깨끗한 마음으로 성사에 참여하며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루카 18,13 참조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가슴을 치며 말하였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성체를 받아 모셨으니 언제나 저희를 천상 은총으로 채워 주시어 굳건한 믿음으로 성실히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자유로이 바칠 수 있다.>

주님, 주님의 오른팔을 펼치시어 믿는 이들에게 하늘의 도움을 내려 주시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아 합당하게 청한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루카 16,14-15는 그들을 두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로 사람들에게는 높이 평가받지만 하느님 앞에서 혐오스러운 자들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런 바리사이가 오늘 비유에서는 “꼿꼿이 서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 곧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 간음하는 자와 같지 않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것에 감사드리는 이 기도 방식은 유다인들이 초세기부터 고유하게 바치던 기도 방식 가운데 하나였는데,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는 같이 기도하고 있던 세리를 지목하며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며, 십일조를 낸다고 자랑합니다. 
바리사이와 달리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이 모습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질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죄인임이 드러나 하느님 앞에서 혐오스러운 자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세리처럼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웃을 업신여기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불리게 될 것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