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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1월 12일 일요일

[(백) 주님 세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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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 대축일을 1월 7일이나 8일에 오는 주일로 옮겨 지내는 곳에서는, 주님 세례 축일은 바로 다음 월요일에 지낸다. 이때 신경은 바치지 않는다.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드러낸 사건이다. 그러므로 주님 공현 대축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전례력으로는 이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다음 날부터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에 대한 순종과 예언의 성취를 위하여 겸손하게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에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순종으로 우리도 주님의 세례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세례에 감사하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 품위에 걸맞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마태 3,16-17 참조
주님이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렸네.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머무르시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그리스도께 성령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로 선포하셨으니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는 성실하게 세상에 공정을 펴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셨다고 강조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가 들려온다(복음).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2,1-4.6-7<또는 40,1-5.9-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29(28),1ㄱ과 2.3ㄱㄷ과 4.3ㄴ과 9ㄷ-10(◎ 11ㄴ)
◎ 주님이 당신 백성에게 강복하여 평화를 주시리라.
○ 하느님의 아들들아, 주님께 드려라. 그 이름의 영광 주님께 드려라. 거룩한 차림으로 주님께 경배하여라. ◎
○ 주님의 소리 물 위에 머무네. 주님이 넓은 물 위에 계시네. 주님의 소리는 힘차고, 주님의 소리는 장엄도 하네. ◎
○ 영광의 하느님 천둥 치시네. 그분의 성전에서 모두 외치네. “영광이여!” 주님이 큰 물 위에 앉아 계시네. 주님이 영원한 임금으로 앉으셨네. ◎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0,34-38<또는 티토 2,11-14; 3,4-7>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르 9,7 참조
◎ 알렐루야.
○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알렐루야.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3-17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가 기쁨과 평화를 세상에 드러내며, 빛과 소금의 모범을 보이게 하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정의로우신 주님, 이 나라 모든 정치인에게 주님의 지혜와 사랑을 심어 주시어, 그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힘쓰며, 특히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3. 예비 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는 주님, 주님의 빛을 찾아 교회로 온 예비 신자들을 돌보시어, 그들이 교회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주님의 진리를 배우고 깨닫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4. 본당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영원한 목자이신 주님, 저희 본당 공동체가 주님에 대한 믿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늘 주님을 찾고 찬미하며,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주님, 사랑하시는 성자께서 세상에 드러나셨음을 기념하며 드리는 이 예물을 받으시어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이 세상의 죄를 씻으신 성자의 희생 제사가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주님 세례(주님 세례 축일)>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새로운 세례의 신비를 드러내시고 하늘의 소리로 주님의 말씀이 사람들 가운데 계심을 믿게 하셨나이다.
또한 비둘기 모양으로 성령을 보내시어 주님의 종 그리스도에게 기쁨의 기름을 바르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며 끝없이 외치나이다.
요한 1,32.34 참조
보라,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보았다. 그래서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였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는 예수님의 겸손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 주셨듯이 구원의 역사에는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놓고 비우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구원의 도구로서 이러한 겸허함과 비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거룩한 양식을 가득히 받고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오니 저희가 성자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며 주님의 참된 자녀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요한의 세례는 죄를 씻는 일이었고, 죄를 씻는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일로 이해됩니다. 죄를 씻기 위하여 우리는 죄를 찾아내려 애씁니다. 고해소 앞에서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꽤나 아픈 일입니다. 고백하건대, 지난 과오를 진정으로 뉘우쳐서 아프기보다 그 과오 때문에 부끄러운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더 아픕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세례를 받으십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세례는 ‘모든 의로움’을 이루는 일입니다. 예언자 시대부터 ‘의로움’은 하느님과 제대로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만남은 대개 계층 간에 벌어지는 갈등의 자리에서, 권력의 다툼 안에 희생된 약자들의 자리에서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시고 집중하시는 곳은 아픔과 슬픔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신앙인들이 일상에서 만나고 웃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를 되돌아봅니다. 의로움을 이루려고 만나는 자리가 있을 수 있고, 죄를 씻기는커녕 서로의 탓을 곱씹느라 죄 속에 허덕이는 피폐한 영혼들을 맞닥뜨리는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끝은 이렇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사야서에 따르면 그 아들은 다른 이의 죄를 대신 짊어져도 말 한마디 없이 죽어 가는 고난받는 종이었습니다. 다른 이를 위하여 대신 죄를 짊어지는 희생을 실천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서로에게 죄를 짊어지우는 일만큼은 줄여야겠습니다. 의로움은 특정한 상황에서 이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과 실천으로 실현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평범한 일상에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자신을 비워 내고, 내어 주고, 참아 주는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