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가톨릭 생활 > 신앙생활 > 매일 미사
2020년 01월 23일 목요일

[(녹) 연중 제2주간 목요일]
12월2020년 01월2월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 -   
시편 66(65),4 참조
하느님, 온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려 당신을 노래하게 하소서.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니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이 시대에 하느님의 평화를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사울의 아들 요나탄은 다윗을 피신시키고,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의 마음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제1독서).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고, 그분께서는 더러운 영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셨다(복음).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8,6-9; 19,1-7
그 무렵 6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이고 군대와 함께 돌아오자,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나와 손북을 치고 환성을 올리며,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면서 사울 임금을 맞았다. 7 여인들은 흥겹게 노래를 주고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8 사울은 이 말에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리니, 이제 왕권 말고는 더 돌아갈 것이 없겠구나.” 9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
19,1 사울이 아들 요나탄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탄은 다윗을 무척 좋아하였기 때문에, 2 이를 다윗에게 알려 주었다.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니, 내일 아침에 조심하게. 피신처에 머무르면서 몸을 숨겨야 하네. 3 그러면 나는 자네가 숨어 있는 들판으로 나가, 아버지 곁에 서서 자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겠네. 그러다가 무슨 낌새라도 보이면 자네에게 알려 주지.”
4 요나탄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좋게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님, 임금님의 신하 다윗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임금님께 죄를 지은 적이 없고, 그가 한 일은 임금님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5 그는 목숨을 걸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였고, 주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임금님께서도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공연히 다윗을 죽이시어, 죄 없는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 6 사울은 요나탄의 말을 듣고,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다윗을 결코 죽이지 않겠다.” 하고 맹세하였다.
7 요나탄은 다윗을 불러 이 모든 일을 일러 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을 사울에게 데리고 들어가, 전처럼 그 앞에서 지내게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56(55),2-3.9-10ㄱㄴ.10ㄷ-11.12-13(◎ 5ㄴ)
◎ 하느님께 의지하여 두려움이 없으리라.
○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저를 짓밟는 사람들이 온종일 몰아치며 억누르나이다. 적들이 온종일 짓밟나이다. 드높으신 하느님, 저를 몰아치는 자들이 많기도 하옵니다. ◎
○ 저는 뜨내기, 당신이 적어 두셨나이다. 제 눈물을 당신 자루에 담으소서. 당신 책에 적혀 있지 않나이까? 제가 부르짖는 그날, 그때 원수들은 뒤로 물러가리이다. ◎
○ 하느님이 내 편이심을 나는 아네. 하느님 안에서 나는 말씀을 찬양하네. 주님 안에서 나는 말씀을 찬양하네. ◎
○ 하느님께 의지하여 두려움 없으니,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느님, 제가 당신께 드린 서원, 감사의 제사로 채우리이다. ◎
2티모 1,10 참조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 알렐루야.
<더러운 영들은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이르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7-12
그때에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8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주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여 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저희에게 구원이 이루어지오니 이 거룩한 신비를 정성껏 거행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23(22),5 참조
주님이 제게 상을 차려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천상 양식을 함께 나누고 비오니 사랑의 성령을 부어 주시어 그 사랑으로 한마음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예수님께서는 몰려오는 군중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고백하여도 “조용히 하여라.” 하고 엄하게 이르십니다. 마르코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께서는 왠지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살갑게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마르코 복음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 ‘거리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사실 마르코 복음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아드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어 세상에 구원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영광과 기쁨 가득한 자리를 꿈꾸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며 건강한 몸과 현실적 축복을 갈망하였던 군중은 십자가와 하느님의 아드님을 도무지 연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군중과의 ‘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 내던지는 우리 욕망의 투사만큼 깊고 먼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내용과 지향점은 십자가와 맞닿아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자신의 영광과 맞닿아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 모든 이와 함께 사랑을 이루는 데 쓰여야 합니다(1코린 1―2장; 13장 참조). 제 이익과 신념만을 위한 기도라면, 그냥 침묵하는 편이 낫습니다. 마르코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침묵하기를 바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가시며 세상을 구원하시려는데, 우리는 십자가는커녕 제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도구로 삼는다면 참으로 죄송한 일입니다. 제대로 된 기도를 하기 전에 침묵을 배웠으면 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