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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 02일 목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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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7(46),2
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하느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다시는 오류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언제나 진리의 빛 속에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아모스를 비난하자, 아모스는 자신이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던 사람으로 주님께 붙잡혀 예언자가 되었다며 이스라엘의 멸망을 거듭 예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치시며,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해 주신다(복음).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 아모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0-17
그 무렵 10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집안 한가운데에서 임금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이런 말을 해 댑니다.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
12 그런 뒤에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16 그러니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하지 말고,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측량줄로 재어 나누어지고,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시편 19(18),8.9.10.11(◎ 10ㄷㄹ)
◎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주님의 법은 완전하여 생기 돋우고, 주님의 가르침은 참되어 어리석음 깨우치네. ◎
○ 주님의 규정 올바르니 마음을 기쁘게 하고, 주님의 계명 밝으니 눈을 맑게 하네. ◎
○ 주님을 경외함 순수하니 영원히 이어지고, 주님의 법규들 진실하니 모두 의롭네. ◎
○ 금보다 순금보다 더욱 값지며, 꿀보다 참꿀보다 더욱 달다네. ◎
2코린 5,19 참조
◎ 알렐루야.
○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네.
◎ 알렐루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 이 신비를 거행하는 저희에게 구원을 베푸시니 이 성찬례가 하느님께 올리는 합당한 제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시편 103(102),1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봉헌하고 받아 모신 성체로 저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저희가 사랑으로 주님과 하나 되어 길이 남을 열매를 맺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 복음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쉬우냐?” 어느 쪽이 쉬운 것일까요. 
죄를 용서하는 일은 하느님께만 있는 권한으로 다른 이에게는 불가능하지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용서받은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정말로 일어나서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결과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하는 것이, 말하기에는 더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시며 당신 자신을 증명해 보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중풍 병자는 “일어나 집으로” 갑니다. 오늘 복음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권한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낫게 하는 더 어려운 일을, 실제로 그가 병이 나아서 걸어가게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드러나십니다. 따라서 “죄를 용서받았다.” 하신 말씀 역시 이루어질 수 있고, 예수님께도 하느님처럼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