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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천지를 탈퇴한 어느 집사의 이야기 1
 관리자(admin)   2018/11/03  13:44

(2018.7.17자 기독교포털뉴스, 정윤석 기자의 “탈퇴자의 눈으로 본 신천지의 실상”에서 발췌)

 

수민, 신천지에 들어가다.

 

20××년 겨울, “수민아, 신천지로 와서 말씀 들어야 산다. 지금 학교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계시의 시대가 열렸는데 지금 이 말씀을 듣지 않고 거부하면 지옥 밖에 없다!”는 엄마의 말에 이끌려 수민(가명, 35세)은 신천지 신학원을 찾았다. 온 가족이 신천지에 매료됐지만 수민은 신천지 말씀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기계처럼 재수강을 하다가 한 강사를 만나면서 머릿속에서만 겉돌던 신천지 교리가 재조합이 되며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신천지 교리를 되풀이해서 배운지 3년째에 접어들어서였다. ‘새언약의 사자’, ‘약속의 목자’(=이만희)를 붙들고 이 시대를 달려 역사를 이뤄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비로소 움텄다.


이때부터 수민은 청년 구역장부터 시작해, 부서 전도팀장, 전도교육 교관, 교회 전도대, 총회 사무실, 센터 전도사까지 20대의 청춘을 신천지에 송두리째 바쳤다. 신천지교회에 상주했고 직장이 끝나면 바로 복음방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제대로 밥을 먹을 시간이 없어 빵으로 간단히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수민은 강사들이 전하는 “너희도 독립투사들처럼 그렇게 살아라. 밥을 못 먹고, 풀뿌리만 먹더라도 말씀을 전하라. 선생님도 청도로 낙향하셨다가 과천으로 올라 오셨을 때 돈이 없었다. 이때 풀뿌리만 캐서 먹더라도 이 말씀은 전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전하셨다.”는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신천지 신도들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찾아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 목숨을 거는 독립투사라는 정신무장이 돼 있었다. 센터에서 전도사를 할 때는 24시간 비상체제였다. 섭외자가 센터에 들어오면 그를 관리하는 인도자로부터 늘 보고를 받았다. 인도자가 즉각 문제가 생겼다고 담당 전도사에게 보고하면 수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로 출동했다. 섭외자의 집 앞에 대기하며 ‘얼굴 한번이라도 보고 얘기하자’고, ‘말씀에서 어긋난 게 있으면 내게도 알려달라’고, ‘한번만 만나달라’고 애걸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해서 한 영혼이라도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다.


지파별로 전도 인원을 보고하고 모두 실적을 올리는데, 실적이 좋지 않으면 담임강사가 큰 창피를 당하고 벌 받고 총회장에게 꾸지람을 듣는 시스템이었다. 항상 지파별로 1등을 하기 위해 이달의 목표 전도 할당량을 채워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센터에 들어온 인원 또한 놓치면 안되었다.


추수꾼 전도를 한창 진행하던 시절에는 추수할 교회로 들어가서 신도인 척 생활했다. 경기도 분당의 유명한 교회의 청년부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 200×년 당시, 신천지는 주일 정규집회를 오후 3시에 진행했다. 오전까지 다른 교회에서 추수활동을 하라는 의미였다. 성도의 대부분이 추수꾼으로 추수밭 교회를 정해 나갔다. 오전에 정통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엔 신천지로 가서 추수꾼 보고서를 작성했다. 목사님의 설교 본문과 설교 내용을 써냈다. 그리고 교리적으로 틀렸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써냈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주일 오전예배를 드릴 때면 목사님의 설교를 꼼꼼히 받아 적었다. 이를 본 정통교회 신도들은 ‘정말 말씀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고 수민을 오해했다. 그러나 ‘비유풀이를 하지 않으면 말씀 자체가 아니다.’라고 이미 마음에 벽을 쌓은 신천지 신도들에게 목사님의 말씀이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 | 교구 사목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