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경신성사성 해설]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의 새 감사송 |
2016/07/19 13:52 |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의 새 감사송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2016년 6월 3일 교령으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거행이 로마 전례력에서 축일로 승격되었으며, 성녀의 이러한 특별한 지위를 감안하여, 「로마 미사 경본」 7월 22일에 삽입된 고유 감사송으로 예식이 더욱 풍부해졌습니다.
10세기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는 이날에 “향유를 들고 다니는(Mirofora)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를 기념해 왔던 반면에, 대체로 서방 전통은 대 그레고리오 성인의 해석을 따라, 마리아 막달레나와, 예수님의 용서를 받은 참회하는 여인과, 마르타와 라자로의 동생인 베타니아의 마리아를 하나의 인물로 결합시켜 왔습니다. 따라서 서방에서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11세기 로마부터 7월 22일에 전례적으로 기념하기 시작하여, 12세기에 다른 모든 곳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우리는 중세의 몇몇 감사송들, 곧 에스파냐 전례와 암브로시오 전례와 프랑크 전례에 기원을 둔 감사송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에 대한 기념을 복음서의 세 여인에 비추어 제시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Corpus praefationum, 라틴 그리스도교 문학 전집[CCSL] 161, 164, 609. 1154, 1281, 1573, 1585항 참조).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전례서 개혁은 7월 22일에 마리아 막달레나만을 기리는 기념일을 유지하고, 그 과정에서 미사와 성무일도의 독서와 기도와 노래를 개정하였습니다.
세 인물을 결합시키고 있는, 막달레나에게 바쳐진 감사송은 암브로시오 전통에서 입증되고 있으며(Corpus praefationum, 609항 참조), 공의회 이후의 전례서 개혁 때까지, 「암브로시오 미사 경본」(Missale Ambrosianum)에는 7월 22일에 미사 중에 신경을 바치라는 규정과 함께 나와 있었습니다. 슈스터(Schuster)는 이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의 부활을 세상에, 바로 사도들에게도 처음으로 알린 분이었기 때문에 '사도와 같으신 분'(isapostolos)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 미사에서 ‘신경’을 바치는 것입니다”(Liber sacramentorum, 제8권, 토리노 1927, 94면). 오늘날의 「암브로시오 미사 경본」(Mediolani 1981, 349/6항, 681면)은 마리아 막달레나만을 기리는 유일한 기념과 어울리도록 감사송 본문을 수정한 것입니다.
「로마 미사 경본」의 새 감사송도 실제로 축일의 구조 안에서 요한 복음 20장 1-2절과 11-18절에 비추어 마련하였습니다(1962년의 미사 경본은 루카 복음 7장 36-50절의 참회하는 여인의 구절을 이용하였습니다.) 실제로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점진적으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바로 자신이 체험한 신비를 사도들에게 가서 알리라는 특별한 명령을 받습니다. 감사송의 본문은 이러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권능이 넘치시고 더욱 자비로우시니,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일에서 아버지를 찬미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주님을 뵈었으며 무덤에 묻히신 주님을 찾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경배하였나이다. 주님께서는 동산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사도들 앞에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시고 새로운 삶의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주님,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양하며 환호하나이다. 거룩하시도다!”
감사송 첫대목에 전능하신 아버지를 찬양하는 아름다운 표현 “권능이 넘치시고 더욱 자비로우신”(cuisus non minor est misericordia quam potestas)을 가져다 놓았는데, 이는 「고트 미사 경본」(Missale Gothicum, Vat. Reg. Lat. 317: L.C. Mohlberg, Herder Roman 출판사, 70항, 21면)에서 가져온 표현입니다.
감사송 본문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행위에 주목하게 합니다. 곧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심과 ……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심”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송이 말하는 것은, 마리아가 주님을 몰라보고 다른 사람으로 여긴 다음에, 빈 무덤이 있던 동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당신 자신을 마리아에게 분명하게 밝혀 주셨으며, 현재의 체험에 비추어 과거를 기억하도록 그를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랑하였고(dilexerat), 바라보았으며(viderat), 찾았고(quaesierat), 경배하였다(adoraverat)“라는 네 동사로 요약됩니다. 이 동사들의 목적어는 바로 마리아가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였고,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바라보았으며, 무덤에 묻히신 것을 보았지만 (무덤에 안 계신 주님을) 찾았던 분, 이제 마리아가 경배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살아 계신(viventem), 돌아가시는(morientem), 묻히신(iacentem), 부활하신(resurgentem)”이라는 운율적 표현에 대한 언급도 빠트려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낱말이 새롭게 덧붙여진 이러한 일련의 표현은 라바노 마우로의 저술로 알려져 있지만 1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복된 마리아 막달레나의 생애’(De vita beatae Mariae Magdalenae)에서 가져온 것으로서(마우로는 세 명의 마리아를 한 인물로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막달레나의 믿음의 시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또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보았던 분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살아 계실 때 사랑하였던 분께서 참 하느님이심을,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던 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참으로 부활하셨음을 믿었습니다, [마리아가] 찾았던 무덤에 묻히신 분이 참으로 하느님 아버지와 같으신 분임을 믿었습니다.”(“crediditque indubianter, quem videbat Christum Filium Dei, verum esse Deum, quem dilexerat viventem, vere a mortuis resurrexisse, quem viderat morientem; vere Deo Patri esse aequalem, quem quaesierat in sepulcro iacentem”: 같은 책 26장, 라틴 교부 총서[PL] 112, 1474).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던 ‘최초’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요한 복음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자료는 전례 전통의 주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감사송 모음집 1154항은 “처음으로 복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주님 친히 살아 계심을 보여 주셨나이다.”(primum se beatae Mariae Magdalenae vivum exhibuit”)라고, 또 1585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셨음을 처음으로 알린 분”(quem prima resurrexisse nuntiavit a mortuis Iesum Christum Dominum nostrum)이라고, 그리고 아침 기도 찬미가는 “부활한 주 예수의 첫 증인 되어, 그 소식 제자들께 전하였도다.”(tu prima vivi ab inferis es testis atque nuntia: 「성무일도」, 7월 22일)에도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여성의 존엄」(Mulieris dignitatem) 16항에서 이 사실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두 번째로, 감사송은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에게] “사도들 앞에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도 앞에서 언급한, 라바노 마우로의 저술로 알려진 ‘복된 마리아 막달레나의 생애’에서 빌려 온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마리아가 “[자신을] 영예롭게 한 사도 직무를 지체 없이 수행하였다.”(apostolatus officio quo honorata fuit fungi non distulit)고 합니다. 사도들이 “새로운 삶의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해야”(bonum novae vitae nuntium ad mundi fines perveniret) 하는 사명을 받았다면, 마리아의 임무는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다는 복음을 사도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상기시킵니다. “그 여인이 이 사실을 바로 사도들에게, 곧 그분의 전령들에게 알렸다는 것은 오직 은총의 지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Tantumque apud eum locum gratiae invenit, ut hunc ipsis quoque apostolis, eius videlicet nuntiis, ipsa nuntiaret: 「복음 강론」[Homiliae in Evangelia], 강론 25: CCSL c 215면).
사실 바로 주님께 받은 이 “사도 직무”로 보아,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사도들의 여사도”라는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요한 복음 해설」[In Ioannem Evangelistam expositio], c. XXX, L III, 6). 설득력을 지닌 이 칭호는 새 감사송의 제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라바노 마우로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구세주께서는 …… [아버지께] 올라가시며, 은총과 영광의 합당한 상급으로 또 영예의 첫째가는 특전으로, 그 여인을 사도들에게 여사도로 세워 주셨습니다. 당신을 섬기는 모든 여자 봉사자들의 공로를 마땅하게 보상해 주신다는 깃발을 든 여인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바로 조금 전에 그 여인을 부활의 복음 선포자로 세우신 구세주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여라’”(Salvator …… ascensionis suae eam ad aposolos instituit apostolam, digna mercede gratiae et gloriae, primoque et praecipue honoris privilegio, digne pro meritis omnium ministrarum suarum remunerans signiferam, quam ante modicum instituerat resurrectionis evangelistam, et ait illi 'Vade ad fratres meos, et dic eis: 같은 책 XXVII, PL 112, 1474).
마지막으로, 감사송은 그리스도께서 “동산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분명하게 나타나셨음”을 일깨우면서, 하와가 최초로 죽음을 가져왔던 낙원 동산을 대조적으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한 연결을 대 그레고리오 성인이 주목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자, 보십시오. 인류의 죄는 생겨 나온 바로 그곳에서 제거됩니다. 낙원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죽음을 마시게 하였고, 무덤에서 여자는 남자들에게 생명을 선포하며, 죽음을 가져다주는 뱀의 말을 전하였던 여자가 자신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인류에게 언어만이 아니라 사물로도 말씀하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여자의 손에서 죽음의 잔을 받아 들었으니, 너희는 여자에게서 생명의 잔을 받아라”(Ecce humani generis culpa ibi absciditur unde processit. Quia in paradiso mulier viro propinavit mortem, a sepulcro mulier viris annuntiat vitam, et dicta sui vivificatoris narrat, quae mortiferi serpentis verba narraverat. Ac si humano generi non verbis Dominus, sed rebus dicat: De qua manu vobis illatus est potus mortis, de ipsa suscipite poculum vitae: 「복음 강론」, 강론 25: CCSL CXLI, 212면).
감사송의 마지막에 덧붙인 환호는 「로마 미사 경본」의 '성인 감사송' II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경신성사성
차관 아서 로시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