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담화] 2024년 제61차 성소 주일 교황 담화 |
2024/04/11 15:50 |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61차 성소 주일 담화
(2024년 4월 21일)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평화를 건설하라는 부르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해마다 성소 주일은 소중한 선물인 주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성찰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순례하는 백성의 일원인 우리가 당신 사랑의 계획에 참여하여 우리의 다양한 생활 신분 안에서 복음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라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 것은, 종교적 이상의 이름으로라도 부과할 수 있는 의무가 아니라, 행복에 대한 우리의 가장 깊은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제일 확실한 방법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받은 선물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그 선물들을 어디에서 열매 맺게 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사랑과 관대한 수용, 아름다움과 평화의 표징이자 도구가 되기 위하여 따를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발견할 때, 우리의 삶이 충만해집니다.
그러하기에 성소 주일은 언제나 신자들이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온 생애를 아우르는 부르심에 응답한 모든 이의 꾸준한 그리고 때로는 눈에 띄지 않는 노력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저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거나 순간의 덧없는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자애로 특징지어지는 관계, 생명의 선물에 대한 개방성, 자녀와 그들의 성장을 위한 헌신을 통하여 자기 삶의 모습을 빚어가는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마음으로 자기 일을 해나가는 모든 이를 떠올립니다. 더 정의로운 세상, 더 연대적인 경제, 더 공정한 사회 정책과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애쓰고 있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삶을 바쳐 공동선을 위하여 일하는 선의의 모든 사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침묵의 기도와 사도직 활동 안에서 주님께 자신의 삶을 봉헌하는 모든 남녀 축성 생활자들을 떠올립니다. 이들은 때로는 사회 주변부에서 끊임없이 창의적으로 자신의 은사를 발휘하면서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섬깁니다. 그리고 성품 사제직에 대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인 모든 이를 생각합니다. 이들은 복음 선포를 위하여 자신을 봉헌하고,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성찬의 빵과 함께 자신의 삶을 쪼개어 나누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하느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모든 이에게 드러냅니다.
저는 젊은이들에게, 특히 교회에 거리감을 느끼거나 교회를 불신하는 이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당신께 이끄시도록 내맡기십시오. 또한 복음 말씀을 읽으면서 여러분이 생각한 중요한 질문들을 예수님께 가져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현존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제기하시는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이 도전은 우리에게 언제나 건강한 위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강요하시지 않고 제안하십니다. 예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는 가운데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청하실 때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내어 드리면서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정 중에 있는 백성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인정하고 동행하는 다양한 은사와 성소가 어우러진 다성 음악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더욱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 백성으로서 성령의 이끄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살아 있는 돌들인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이자 서로 형제자매인 대가족의 일원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두어 둔 외딴섬들이 아니라 더 큰 전체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소 주일은 시노달리타스의 특성을 지닙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다양한 은사들을 인정하고 성령께서 모든 이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이끄시는 곳이 어디인지 식별하고자 서로 경청하고 함께 걸어가라고 부름받고 있는 것입니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2025년 희년으로 나아가는 공동의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희망의 순례자로서 성년(聖年)을 향하여 함께 나아갑시다. 성령께서 베푸시는 다양한 선물 가운데에서 자신의 성소와 그 자리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꿈을 알리는 전령이자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으로 또 애덕과 협력과 형제애의 유대로 결합된 한 인류 가족을 꿈꾸십니다.
성소 주일은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아버지께 거룩한 성소의 선물을 청하는 기도에 특별히 봉헌된 날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 10,2). 아시다시피, 기도는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보다 하느님 말씀을 귀여겨듣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이야기하시며 그 마음이 열려 있고 진실하며 너그럽기를 바라십니다. 주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뜻을 전부 드러내 주십니다. 희년을 준비하며 기도에 전념하는 올해, 우리 모두는 주님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고 희망의 순례자가 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이 더없는 축복임을 재발견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기도는 희망의 첫 번째 힘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희망이 자라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저는 기도가 희망으로 가는 문을 열어 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편에 희망이 존재하지만, 그 희망에 이르는 문은 나의 기도로 여는 것입니다”(수요 일반 알현 교리 교육, 2020.5.20.).
희망의 순례자, 평화의 건설자
그런데 순례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순례에 나서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적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언제나 그 목적지를 마음과 정신에 새겨 두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지에 다다르려면, 모든 걸음을 집중하여 내디뎌야 합니다. 곧, 자신을 짓누르는 짐들을 없애고 꼭 필요한 것만 들고 가벼운 상태로 여행하며 날마다 온갖 피로, 두려움, 불안, 망설임을 떨쳐 버리고자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순례자가 된다는 것은, 날마다 다시 길을 나서는 것,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것, 피로와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 눈앞에 새로운 지평과 미지의 경관을 펼쳐 놓는 그 여정의 다양한 단계들을 따라가는 데에 필요한 열정과 힘을 되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순례의 궁극적인 의미는 바로,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자양분을 얻는 내적 여정에 힘입어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순례는 목적 없는 여행이나 정처 없는 방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날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곧 평화와 정의와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걸음을 내딛으려고 노력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며 이를 실현하려고 최선을 다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기에, 우리는 희망의 순례자입니다.
모든 성소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희망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개인으로서 또 공동체로서 다양한 은사와 직무를 통하여, 매우 중요한 시대적 도전들에 직면해 있는 이 세상에 희망의 복음 메시지를 전하는 데에 ‘몸과 마음을 다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시대 변화에는 산발적인 싸움이 제3차 세계 대전으로 번지려는 불길한 조짐, 더 나은 미래를 찾아 고향 땅을 벗어나 피난하는 이주민들의 대열, 가난한 이들의 지속적인 증가, 지구의 안녕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해치는 위협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 외에도,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으로 우리는 때때로 체념이나 패배주의에 빠질 위험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희망으로 가득한 안목을 길러, 우리가 받은 부르심에 응답하고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면서 충실히 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오로 성인의 말씀대로, 이러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 이 희망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에서 비롯되었고 주님께서 모든 이 저마다의 마음 안에서 그리고 모든 피조물의 ‘마음’ 안에서 성취하기를 바라시는 구속 사업에 우리가 동참하게 해 줍니다. 이 희망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추진력을 얻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세상에 스며든 생명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죽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또다시 곳곳에 부활의 싹이 돋아납니다. 이는 막을 수 없는 힘입니다. 가끔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저기에서 고질적인 불의와 사악함과 무관심과 잔인함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둠 속에서도 언제나 새로운 어떤 것이 생명의 싹을 틔우고 언젠가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복음의 기쁨」, 276항).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거듭 말합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로마 8,24).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성취된 구원은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희망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희망에 힘입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도전들에 맞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희망의 순례자이며 평화의 건설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였고 살아가고자 하는 성소 안에서 우리의 모든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인식을 가지고 우리 삶을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반석 위에 기초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 길에서 실패도 걸림돌도 생겨날 수 있지만 우리가 뿌리는 선의 씨앗은 소리없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또한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최종 목적인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그리고 형제애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기쁨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궁극적 소명을 우리는 날마다 미리 맛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그리고 우리 형제자매들과 이루는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바로 지금도 우리는 일치, 평화, 형제애를 향한 하느님의 꿈을 실현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 부르심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유한 생활 신분에서 나름대로 작은 방식으로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희망과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투신할 수 있는 용기
이에, 제가 리스본 세계청년대회에서 했던 말을 되풀이하고자 합니다. “일어나십시오!” 잠에서 깨어납시다. 우리가 저마다 교회와 세상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성소를 찾고 희망의 순례자이며 평화의 건설자가 될 수 있도록, 무관심을 뒤로하고 우리 스스로를 가두어 놓곤 하는 감옥의 문을 열어젖힙시다!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집시다. 그리고 우리가 어느 곳에서 살아가고 있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에 투신합시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투신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집시다!”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의 사도로서 언제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섰던 오레스테 벤치 신부는 아무것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고 무엇도 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부유한 사람도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러 가신 것처럼 우리 또한 기쁨의 전령이자 새 생명의 원천, 형제애와 평화의 장인이 될 수 있도록, 모두 일어나 희망의 순례자로서 길을 나섭시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4년 4월 21일
부활 제4주일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