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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8년 교구장 성탄 메시지
   2018/12/23  15:45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춥고 어두운 세상에 따스하고 밝은 빛으로 오신 구세주를 영접하며 이 기쁨을 교구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예수님께서 벌써 2천 년 전에 이 세상에 태어나셨지만, 교회는 매년 전례력으로 성탄을 기념하며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시킵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예수님의 성탄을 맞아 내 마음 안에, 우리 가정에,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이사야 예언자의 이 말씀처럼 빛으로 오신 구세주께서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 주셨고, 그분을 믿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초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구세주의 성탄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실로 눈을 돌려 보면, 세상은 아직도 춥고 어둡습니다. 전쟁과 기아를 피해 자유세계를 찾아오는 난민은 지금도 생사의 선을 넘나들고 있지만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강대국들은 난민의 어려움을 외면합니다. 한반도의 정세도 평화를 향해 나아가려 노력하지만 앞에 놓인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치는 어지럽고 경제 상황도 어렵습니다. 비정규직 젊은 청년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죽음의 위험에 내몰리고, 빈곤층의 노인들은 이 겨울을 나기가 참으로 힘겹습니다. 세상의 상황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여전히 춥고 어둡습니다. 하지만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구세주께서 세상에 오신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나약한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구세주 탄생의 의미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분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자신을 낮추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높은 것을 추구하며 자꾸만 높아지려고 합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은 남을 짓밟고 올라서서라도 높아지려고 합니다. 내가 높아지는 만큼 다른 사람이 내 밑에 깔려 낮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만 높아지는 것이 우리 마음을 채워 주지는 못합니다. 세상은 과거보다 더 높아졌지만, 우리의 마음은 오히려 더 공허해졌습니다. 세상은 더 부유해졌지만, 우리의 마음은 더 헐벗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더 화려하고 밝아졌지만, 우리 마음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을 낮춤으로써 높아지는 하늘나라의 가치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구는 지난 2011년 교구 설정 백주년을 보내고, 올해 성모당 봉헌 백주년을 지냈습니다. 초대 교구장이신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 성모님께 드렸던 원의와 정신이 성모당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성모당 봉헌 백주년을 맞아 저는 “새로운 서약, 새로운 희망”이라는 사목 교서에서, 3년 동안 성모님께 대한 원의와 희망으로 특별히 기도하고 노력하자고 밝혔습니다. ‘회개의 해’를 보낸 우리는 내년을 ‘용서와 화해의 해’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도 용서하고 화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더 낮아져야 하고 나의 마음을 더 비워 내야 합니다. 나도 죄를 지은 죄인이고 하느님께 더 큰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는 자각이 있을 때,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와 아량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더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낮은 모습으로 오신 구세주를 처음으로 맞이하고 경배할 수 있었던 이들은 낮은 이들이었습니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루카 2,8) 어두운 밤에 양 떼를 지키느라 들판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가난한 목자들이 가장 먼저 구세주 탄생을 맞이하고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임금이나 율법학자, 종교 지도자 같은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루카 2,10)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그러니 기뻐합시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어, 낮은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며 이웃과 화해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갑시다. 다시 한 번 주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2018년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 환 길(타대오)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