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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 말씀
나오미와 룻 (제10회 교구 여성의 날 미사 강론)
  •   2026-03-17
  •   1020

제10회 교구 여성의 날 미사

 

2026. 03. 16. 범어대성당

 

제10회 교구 여성의 날 행사를 작년에 이어 올해도 범어대성당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밀라논나 씨를 모시고 강의를 듣고 토크 콘서트를 한다고 하니 기대가 큽니다.

저는 밀라논나 씨를 잘 모릅니다만, 얼마 전에 가톨릭평화방송과 유튜브를 몇 번 찾아봤습니다. 참으로 멋을 아는 분이시고 쿨(Cool)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도 좋으신 분으로 보였습니다. 오늘 귀하신 분을 모셨으니, 오후까지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통화하려면 전화번호 몇 번을 눌러야 할까요? 010-73-4627입니다. 이 번호가 무슨 번호인지 아시죠? 성경 권수입니다. 구약성경 46권과 신약성경 27권으로 총 73권입니다. 하느님과 통화하려면 성경을 펼치고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 중에는 사람 이름을 딴 성경이 많습니다. 그것도 거의 남성 이름입니다. 그런데 여성 이름으로 된 성경은 몇 권일까요? 구약에 3권 있습니다. 에스테르기, 유딧기, 룻기입니다. 에스테르와 유딧은 유다인인데, 룻은 이방인 여자입니다. 오늘은 룻기에 나오는 세 여성, 특히 룻과 룻의 시어머니인 나오미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룻기 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마흘론과 킬욘이었는데, 이렇게 그들은 모압 지방에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그러다가 마흘론과 킬욘, 이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룻 1,1-5)

결국 남자 셋은 다 죽고 여자 셋이 남은 것입니다. 이 기막힌 현실을 이 세 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겠습니까?

나오미는 이제 고향인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길을 나서는데, 두 며느리도 따라나서는 것입니다. 그때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따라오지 말고 새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두 며느리는 소리 높여 울면서 시어머니한테 “아닙니다. 저희도 어머님과 함께 어머님의 겨레에게로 가렵니다.”(1,10)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들아, 돌아가려무나. 어쩌자고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주님의 손에 얻어맞은 이 몸, 너희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너무나 쓰라리단다.”(1,11.13)

그러자 큰 며느리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 키스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말합니다. “보아라. 네 동서는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1,15)

그러자 룻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1,16-17)

참으로 감동스럽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에 돌아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룻기 3장을 보면, 나오미가 며느리 룻의 짝을 맺어주기 위하여 하나의 작전을 짜서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룻이 시어머니의 계획대로 하여 보아즈라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결국 그들은 혼인하여 아들 오벳을 낳게 됩니다. 오벳이 누구죠?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룻기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을 낳았다.”(4,22) 마태오 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똑같은 구절이 나옵니다(마태 1,5-6 참조).

이렇게 하여 이방인 여자 룻이 다윗 임금의 증조모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윗 임금의 족보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룻기에 나오는 세 여자의 기구한 운명과,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맞아들이고 극복해 내는지를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이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이지만 서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구속하려 하지 않고 자유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이들의 마음이 열려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룻기를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안함을 느낍니다. 오늘날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나 가족 간의 어려움도 참 많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룻기를 찬찬히 읽어보고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오미와 룻의 열린 모습은 신약에 와서 대표적으로 성가정에서 볼 수 있습니다.

며칠 후면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만, 요셉은 자기 정혼자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했겠습니까! 온갖 생각, 온갖 고민을 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더 했겠지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몸에 아기가 잉태했다니,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루카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에 축제를 지내러 성가정이 예루살렘에 갔다가 소년 예수님을 잃어버렸던 일이 있었지요. 그래서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사흘 밤낮으로 찾아다녔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 가운데 있는 것을 보고 성모님이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2,48) 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

이 대답을 들었을 때 두 분은 얼마나 당황스럽고 섭섭했겠습니까? 루카복음 2장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고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2,50-51) 성모님의 내공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예수, 마리아, 요셉, 이 세 분이 이루신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성자 예수님을 모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엄청난 일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드리는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면서도 거룩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요한 4,43-54)은 예수님께서 어느 왕실 관리의 아들을 고쳐주시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왕실 관리이든 백부장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죄인이든 의인이든, 그 누구의 청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 내가 고쳐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 편안히 가거라.” 얼마나 따뜻한 말씀입니까! 얼마나 열려있습니까! 예수님께는 어떤 경계나 차별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터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는 험난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폭력적이며 자기밖에 모르는 몇몇 지도자들 때문에 더 힘들고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기도합니다. 전쟁은 정말 미친 짓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도 너무나 생존경쟁이 심하고, 그로 인한 이기주의와 차별과 갈등과 미움과 혐오가 많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요셉 성인처럼, 그리고 나오미처럼, 룻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요?

 

지금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토록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찬미합시다!

2026. 03. 16. 범어대성당

 

제10회 교구 여성의 날 행사를 작년에 이어 올해도 범어대성당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밀라논나 씨를 모시고 강의를 듣고 토크 콘서트를 한다고 하니 기대가 큽니다.

저는 밀라논나 씨를 잘 모릅니다만, 얼마 전에 가톨릭평화방송과 유튜브를 몇 번 찾아봤습니다. 참으로 멋을 아는 분이시고 쿨(Cool)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도 좋으신 분으로 보였습니다. 오늘 귀하신 분을 모셨으니, 오후까지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통화하려면 전화번호 몇 번을 눌러야 할까요? 010-73-4627입니다. 이 번호가 무슨 번호인지 아시죠? 성경 권수입니다. 구약성경 46권과 신약성경 27권으로 총 73권입니다. 하느님과 통화하려면 성경을 펼치고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 중에는 사람 이름을 딴 성경이 많습니다. 그것도 거의 남성 이름입니다. 그런데 여성 이름으로 된 성경은 몇 권일까요? 구약에 3권 있습니다. 에스테르기, 유딧기, 룻기입니다. 에스테르와 유딧은 유다인인데, 룻은 이방인 여자입니다. 오늘은 룻기에 나오는 세 여성, 특히 룻과 룻의 시어머니인 나오미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룻기 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판관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나라에 기근이 든 일이 있었다. 그래서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모압 지방에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고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이며 두 아들의 이름은 마흘론과 킬욘이었는데, 이렇게 그들은 모압 지방에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어서 나오미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이들은 모압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한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이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룻이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십 년쯤 살았다. 그러다가 마흘론과 킬욘, 이 두 사람도 죽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자식과 남편을 여읜 채 혼자 남게 되었다.”(룻 1,1-5)

결국 남자 셋은 다 죽고 여자 셋이 남은 것입니다. 이 기막힌 현실을 이 세 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겠습니까?

나오미는 이제 고향인 유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길을 나서는데, 두 며느리도 따라나서는 것입니다. 그때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따라오지 말고 새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두 며느리는 소리 높여 울면서 시어머니한테 “아닙니다. 저희도 어머님과 함께 어머님의 겨레에게로 가렵니다.”(1,10)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들아, 돌아가려무나. 어쩌자고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주님의 손에 얻어맞은 이 몸, 너희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너무나 쓰라리단다.”(1,11.13)

그러자 큰 며느리 오르파는 시어머니에게 작별 키스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에게 바싹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말합니다. “보아라. 네 동서는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1,15)

그러자 룻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1,16-17)

참으로 감동스럽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여 나오미는 모압 출신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에 돌아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룻기 3장을 보면, 나오미가 며느리 룻의 짝을 맺어주기 위하여 하나의 작전을 짜서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룻이 시어머니의 계획대로 하여 보아즈라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결국 그들은 혼인하여 아들 오벳을 낳게 됩니다. 오벳이 누구죠?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룻기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을 낳았다.”(4,22) 마태오 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똑같은 구절이 나옵니다(마태 1,5-6 참조).

이렇게 하여 이방인 여자 룻이 다윗 임금의 증조모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윗 임금의 족보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룻기에 나오는 세 여자의 기구한 운명과,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맞아들이고 극복해 내는지를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이들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이지만 서로에게 부담을 주거나 구속하려 하지 않고 자유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이들의 마음이 열려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룻기를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안함을 느낍니다. 오늘날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나 가족 간의 어려움도 참 많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룻기를 찬찬히 읽어보고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오미와 룻의 열린 모습은 신약에 와서 대표적으로 성가정에서 볼 수 있습니다.

며칠 후면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만, 요셉은 자기 정혼자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했겠습니까! 온갖 생각, 온갖 고민을 다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더 했겠지요? 아무 일도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몸에 아기가 잉태했다니,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루카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에 축제를 지내러 성가정이 예루살렘에 갔다가 소년 예수님을 잃어버렸던 일이 있었지요. 그래서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사흘 밤낮으로 찾아다녔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 가운데 있는 것을 보고 성모님이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2,48) 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

이 대답을 들었을 때 두 분은 얼마나 당황스럽고 섭섭했겠습니까? 루카복음 2장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고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2,50-51) 성모님의 내공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예수, 마리아, 요셉, 이 세 분이 이루신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성자 예수님을 모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엄청난 일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드리는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면서도 거룩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요한 4,43-54)은 예수님께서 어느 왕실 관리의 아들을 고쳐주시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왕실 관리이든 백부장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죄인이든 의인이든, 그 누구의 청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 내가 고쳐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 편안히 가거라.” 얼마나 따뜻한 말씀입니까! 얼마나 열려있습니까! 예수님께는 어떤 경계나 차별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터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는 험난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폭력적이며 자기밖에 모르는 몇몇 지도자들 때문에 더 힘들고 어려워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전쟁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기도합니다. 전쟁은 정말 미친 짓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사는 이 대한민국도 너무나 생존경쟁이 심하고, 그로 인한 이기주의와 차별과 갈등과 미움과 혐오가 많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요셉 성인처럼, 그리고 나오미처럼, 룻처럼 그렇게 살 수는 없을까요?

 

지금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토록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찬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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