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총대리
Archbishop/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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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셉처럼 (꾸르실료 전국 주간단 정기총회 파견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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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르실료 전국 주간단 정기총회 파견미사
2026. 03. 21.(토) 꾸르실료 교육관
지난 100년 동안에 가톨릭교회 안에 있었던 가장 큰 일 하나를 든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일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바람을 거부하는 부류도 있었지만, 대부분 기쁘게 받아들이고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로 평신도 중심의 많은 신심운동과 액션활동들이 일어났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꾸르실료운동입니다. 스페인에서 시작하였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꾸르실료운동에 헌신하셨고 또 현재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크리스찬 정신으로 제대로 무장하고 살아가는 꾸르실리스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교회는 발전하고 하느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이 점점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이 넘도록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중동 전쟁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정글과 같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너무나 정치적 갈등이 심하고 분열되어 있습니다. 뭘 하나 합의할 줄을 모릅니다. 정치적인 이념이 다르다고 원수처럼 여깁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도 가끔 일어나기도 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주장을 굽힐 줄 모르고 상대를 타도하는 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적인 사고보다는 세속적인 사고와 방식으로 문제를 대하고 해결하려 합니다. 이러한 일은 사실 어느 시대에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7,40-53)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저분은 참으로 예언자시다.” “저분은 메시아시다.”라고 하면서 환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또 어떤 사람들은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하면서 배척하였습니다. 편견과 지역갈등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당시 바리사이이면서 최고의회 의원이었던 니코데모라는 사람, 그는 언젠가 누가 볼까봐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몇 가지 질문을 했던 사람인데, 그가 말하길,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하고 하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갈등과 분열과 시기와 질투와 혐오와 미움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시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외면한 채 서로 싸우고 죽이고 소외시키고 미워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십자가 위에서 외롭게 매달려 계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꾸르실료 수료식 때 십자가를 달아주면서 “그리스도는 당신만을 믿습니다.”라는 말씀을 우리는 듣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만을 믿습니다. 우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이 주님의 참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 세상이 달아질 것입니다.
그저께 19일이 ‘성 요셉 대축일’이었고 3월이 ‘성 요셉 성월’입니다. 성모님도 대단하지만 요셉 성인도 참으로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약혼자가 자기하고 관계없이 임신하였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스러웠겠습니까! 그리고 온갖 생각과 고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설명하였다 하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였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요셉은 자신보다는 마리아를 어떻게 하면 다치지 않게 지켜주려고 하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셉을 성가정의 수호자, 성교회의 보호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꾸르실리스타들이 성 요셉처럼 살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정을 지키고 우리 교회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시길 빕니다. 데 꼴로레스! 2026. 03. 21.(토) 꾸르실료 교육관
지난 100년 동안에 가톨릭교회 안에 있었던 가장 큰 일 하나를 든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일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바람을 거부하는 부류도 있었지만, 대부분 기쁘게 받아들이고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로 평신도 중심의 많은 신심운동과 액션활동들이 일어났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꾸르실료운동입니다. 스페인에서 시작하였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꾸르실료운동에 헌신하셨고 또 현재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크리스찬 정신으로 제대로 무장하고 살아가는 꾸르실리스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교회는 발전하고 하느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이 점점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이 넘도록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얼마 전에 중동 전쟁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정글과 같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너무나 정치적 갈등이 심하고 분열되어 있습니다. 뭘 하나 합의할 줄을 모릅니다. 정치적인 이념이 다르다고 원수처럼 여깁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교회 안에도 가끔 일어나기도 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주장을 굽힐 줄 모르고 상대를 타도하는 데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적인 사고보다는 세속적인 사고와 방식으로 문제를 대하고 해결하려 합니다. 이러한 일은 사실 어느 시대에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7,40-53)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저분은 참으로 예언자시다.” “저분은 메시아시다.”라고 하면서 환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또 어떤 사람들은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하면서 배척하였습니다. 편견과 지역갈등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당시 바리사이이면서 최고의회 의원이었던 니코데모라는 사람, 그는 언젠가 누가 볼까봐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몇 가지 질문을 했던 사람인데, 그가 말하길,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하고 하였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갈등과 분열과 시기와 질투와 혐오와 미움 때문에,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시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외면한 채 서로 싸우고 죽이고 소외시키고 미워하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십자가 위에서 외롭게 매달려 계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꾸르실료 수료식 때 십자가를 달아주면서 “그리스도는 당신만을 믿습니다.”라는 말씀을 우리는 듣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만을 믿습니다. 우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챤들이 주님의 참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이 세상이 달아질 것입니다.
그저께 19일이 ‘성 요셉 대축일’이었고 3월이 ‘성 요셉 성월’입니다. 성모님도 대단하지만 요셉 성인도 참으로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약혼자가 자기하고 관계없이 임신하였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스러웠겠습니까! 그리고 온갖 생각과 고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설명하였다 하더라도 어떻게 받아들였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요셉은 자신보다는 마리아를 어떻게 하면 다치지 않게 지켜주려고 하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셉을 성가정의 수호자, 성교회의 보호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꾸르실리스타들이 성 요셉처럼 살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정을 지키고 우리 교회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시길 빕니다. 데 꼴로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