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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를 사랑해 주세요 (성유 축성 미사 강론)
  •   2026-04-03
  •   1066

성유 축성 미사

 

2026. 04. 02.(목) 범어대성당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지금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평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루빨리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파스카 성삼일을 앞두고 교구 내 모든 신부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주교와 함께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하면서 일치와 친교를 다지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우리 교구의 모든 사제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올해로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시는 김무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 최홍길 레오 신부님, 박창호 요셉 신부님, 박영식 야고보 신부님, 최휘인 바오로 신부님, 그리고 사제서품 60주년 회경축을 맞이하시는 조정헌 바드리시오 신부님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시길 빕니다.

 

우리는 이 미사 중에 앞으로 1년 동안 사용할 병자 성유와 예비신자 성유를 축복하고, 축성 성유를 축성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세주, 혹은 메시아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원래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자들도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을 보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이란 말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혹은 성품성사를 통해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특히 거룩한 기름으로 축성된 사제는 신자들이 세례와 견진을 통해 받은 보편 사제직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루카 4,16-21)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어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읽으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예수님께서 읽으신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은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해마다 성유축성미사 복음으로 봉독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사제들이 실제로 살아야 할 말씀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성인품에 오르신 존 헨리 뉴먼 추기경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제는 다름 아닌 바로 그분, 즉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해야 한다. 사제가 행하는 것은 그분이 행하시는 것이다. 사제가 사람들에게 세례를 준다면, 그분이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고, 사제가 교우들을 강복한다면, 그분이 강복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사제가 활동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제는 늘 예수님께 기준을 두면서 사람들에게 신뢰와 자비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명은 제자들에게 위임되었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 사제들에게도 위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임된 그 사명은,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병자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언직과 사제직과 왕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에 ‘성물’이라는 제목의 KBS 다큐를 봤습니다. 제4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2022년 10월 29일에 무슨 일이 있었지요? 이태원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무려 159명이라는 사람들이 서울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서 넘어져서 압사당했습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상은’이라는 아가씨도 그날 친구들과 그곳에 갔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부부는 딸의 방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고, 매일 딸의 방을 청소하고 정리하며 슬픔과 어두움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기 전에 딸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딸이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딸은 명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 중이었는데, 그날 친구들과 할로윈데이 전야 축제 때 그곳에 갔다가 그런 참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명동성당을 찾아가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하였습니다. 6개월 동안 교리를 배우고, 드디어 세례를 받고 그 자리에서 두 분이 혼인성사를 맺었던 것입니다. 세례성사와 혼인성사를 동시에 받으면서 두 분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다큐 제4편의 소제목은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의 치유를 가져왔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그 부부는 딸 때문에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딸이 원했던 세례성사와 혼인성사를 받으면서 몸과 마음과 영이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와 성사는 참으로 대단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제는 언제 어디서든지 정성을 다하여 전례를 집전하고 성사를 집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듯이, 사제도 상처를 받고 힘들어할 때가 있습니다. 사제가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번 4월의, 교황님의 기도 지향이 ‘위기를 겪는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제들이 필요한 동반을 얻고, 공동체가 이해와 기도로 사제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도록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2월에 우리 교구 신부님들 330여 명이 대구가톨릭대학교에 모여 2박3일 동안 사제 연수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연수 주제가 ‘Who am I?’ 즉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제로 한국 로고테라피 연구소장인 김미라 아녜스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사제도 사목활동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어렵고 힘든 일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참된 자아를 찾고 사제로서의 삶의 의미를 찾을 때 그런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제 혼자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과 교회의 보호가 필요하고, 특히 교우 여러분의 기도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연수 강의 마지막에 ‘사제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글을 들었는데, 공감이 가는 글이라 여러분도 함께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지금 들려드리겠습니다.

 

<사제를 사랑해 주세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매년 많은 사제가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사제가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도, 하느님께서 부르신 삶의 소명을 믿지 않기 때문도 아닙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사제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사제가 교회를 떠나 사제직을 그만두는 바로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완전히 소진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사람들을 위해 영적인 짐을 짊어진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제는 한밤중에 일어나 믿음의 가족, 신앙공동체를 위해 기도합니다.

한밤중 가슴 깊이 누군가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설칩니다.

사람들의 부재나 혹은 거리감 등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에 압도되기도 합니다.

다가올 주일 메시지, 강론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어떻게 이를 적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합니다.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는 것은 일상입니다.

늘 더 잘해야 한다거나, 혹은 아무튼 교회의 어떤 부분에서라도 더 좋아져야 한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듣습니다.

 

사제는 자신의 삶을 통째로 사람들에게 헌신하지만,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폭풍의 조짐이 보이면, 아무런 대화 없이 사제에게서 등을 돌리기가 다반사입니다.

사제는 늘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사제는 또한 늘 가십거리의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사제는 깨어진 결혼과 가정을 중재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제는 상실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사제는 각 사람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각자가 삶이라는 바다를 잘 항해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합니다.

 

사제는 영적인 정진을 열망합니다.

사제는 당신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 사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제가 육적인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도 동시에 하느님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성장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사제는 게시판에 악플이 달린 아픈 글들을 읽습니다.

사제는 사람들의 소곤거리는 뒷담화를 듣습니다.

사제는 많은 부정적인 것들을 감내합니다.

그럼에도, 사제는 늑대들과 맞서 싸우면서 끊임없이 양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사제는 쏟아붓고 또 쏟아붓습니다.

그러나 뭔가 안으로 흘러 들어와 채워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어느 순간, 내면이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사제들은 무엇 때문에 계속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걸까요?

 

– 바로 “당신” –

바로 당신 – 지독할 정도로 내면이 허기진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 – 열정을 다해 자유롭게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 – 예수님을 따르고자 애쓰고 있는 십대 청소년,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 – 그리스도 안에서 찾은 희망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 – 평화를 찾아, 희망을 찾아, 그리고 공동체를 찾아 용기 내어 처음으로 교회의 문을 두드린 당신, 그리고 스스로 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온 당신,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사제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사제와 함께 섬겨주십시오.

사제와 대화해 주세요.

사제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세요.

 

사제도 “인간, 사람”입니다.

사제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이 필요합니다.

 

출처; CTTO Catholic Tradition & Evangelization(가톨릭 전통과 복음화) 김미라 번역.

2026. 04. 02.(목) 범어대성당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지금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평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루빨리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파스카 성삼일을 앞두고 교구 내 모든 신부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주교와 함께 성유축성미사를 봉헌하면서 일치와 친교를 다지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우리 교구의 모든 사제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특히 올해로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시는 김무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 최홍길 레오 신부님, 박창호 요셉 신부님, 박영식 야고보 신부님, 최휘인 바오로 신부님, 그리고 사제서품 60주년 회경축을 맞이하시는 조정헌 바드리시오 신부님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시길 빕니다.

 

우리는 이 미사 중에 앞으로 1년 동안 사용할 병자 성유와 예비신자 성유를 축복하고, 축성 성유를 축성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세주, 혹은 메시아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원래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자들도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11장 26절을 보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이란 말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혹은 성품성사를 통해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특히 거룩한 기름으로 축성된 사제는 신자들이 세례와 견진을 통해 받은 보편 사제직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루카 4,16-21)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어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읽으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예수님께서 읽으신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은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해마다 성유축성미사 복음으로 봉독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사제들이 실제로 살아야 할 말씀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성인품에 오르신 존 헨리 뉴먼 추기경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제는 다름 아닌 바로 그분, 즉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해야 한다. 사제가 행하는 것은 그분이 행하시는 것이다. 사제가 사람들에게 세례를 준다면, 그분이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고, 사제가 교우들을 강복한다면, 그분이 강복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사제가 활동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제는 늘 예수님께 기준을 두면서 사람들에게 신뢰와 자비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명은 제자들에게 위임되었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 사제들에게도 위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임된 그 사명은,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백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며. 병자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언직과 사제직과 왕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에 ‘성물’이라는 제목의 KBS 다큐를 봤습니다. 제4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2022년 10월 29일에 무슨 일이 있었지요? 이태원 참사가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무려 159명이라는 사람들이 서울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서 넘어져서 압사당했습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상은’이라는 아가씨도 그날 친구들과 그곳에 갔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부부는 딸의 방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고, 매일 딸의 방을 청소하고 정리하며 슬픔과 어두움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기 전에 딸이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딸이 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딸은 명동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 중이었는데, 그날 친구들과 할로윈데이 전야 축제 때 그곳에 갔다가 그런 참변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명동성당을 찾아가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하였습니다. 6개월 동안 교리를 배우고, 드디어 세례를 받고 그 자리에서 두 분이 혼인성사를 맺었던 것입니다. 세례성사와 혼인성사를 동시에 받으면서 두 분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다큐 제4편의 소제목은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의 치유를 가져왔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은 그 부부는 딸 때문에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딸이 원했던 세례성사와 혼인성사를 받으면서 몸과 마음과 영이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와 성사는 참으로 대단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제는 언제 어디서든지 정성을 다하여 전례를 집전하고 성사를 집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듯이, 사제도 상처를 받고 힘들어할 때가 있습니다. 사제가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번 4월의, 교황님의 기도 지향이 ‘위기를 겪는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제들이 필요한 동반을 얻고, 공동체가 이해와 기도로 사제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도록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2월에 우리 교구 신부님들 330여 명이 대구가톨릭대학교에 모여 2박3일 동안 사제 연수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연수 주제가 ‘Who am I?’ 즉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제로 한국 로고테라피 연구소장인 김미라 아녜스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사제도 사목활동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어렵고 힘든 일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참된 자아를 찾고 사제로서의 삶의 의미를 찾을 때 그런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제 혼자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과 교회의 보호가 필요하고, 특히 교우 여러분의 기도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연수 강의 마지막에 ‘사제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글을 들었는데, 공감이 가는 글이라 여러분도 함께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지금 들려드리겠습니다.

 

<사제를 사랑해 주세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매년 많은 사제가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사제가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도, 하느님께서 부르신 삶의 소명을 믿지 않기 때문도 아닙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사제직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사제가 교회를 떠나 사제직을 그만두는 바로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완전히 소진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사람들을 위해 영적인 짐을 짊어진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제는 한밤중에 일어나 믿음의 가족, 신앙공동체를 위해 기도합니다.

한밤중 가슴 깊이 누군가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설칩니다.

사람들의 부재나 혹은 거리감 등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에 압도되기도 합니다.

다가올 주일 메시지, 강론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어떻게 이를 적용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합니다.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는 것은 일상입니다.

늘 더 잘해야 한다거나, 혹은 아무튼 교회의 어떤 부분에서라도 더 좋아져야 한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듣습니다.

 

사제는 자신의 삶을 통째로 사람들에게 헌신하지만,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폭풍의 조짐이 보이면, 아무런 대화 없이 사제에게서 등을 돌리기가 다반사입니다.

사제는 늘 논쟁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사제는 또한 늘 가십거리의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사제는 깨어진 결혼과 가정을 중재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제는 상실의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사제는 각 사람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각자가 삶이라는 바다를 잘 항해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합니다.

 

사제는 영적인 정진을 열망합니다.

사제는 당신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 사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제가 육적인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도 동시에 하느님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성장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사제는 게시판에 악플이 달린 아픈 글들을 읽습니다.

사제는 사람들의 소곤거리는 뒷담화를 듣습니다.

사제는 많은 부정적인 것들을 감내합니다.

그럼에도, 사제는 늑대들과 맞서 싸우면서 끊임없이 양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사제는 쏟아붓고 또 쏟아붓습니다.

그러나 뭔가 안으로 흘러 들어와 채워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어느 순간, 내면이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사제들은 무엇 때문에 계속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걸까요?

 

– 바로 “당신” –

바로 당신 – 지독할 정도로 내면이 허기진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 – 열정을 다해 자유롭게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 – 예수님을 따르고자 애쓰고 있는 십대 청소년,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 – 그리스도 안에서 찾은 희망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바로 당신 – 평화를 찾아, 희망을 찾아, 그리고 공동체를 찾아 용기 내어 처음으로 교회의 문을 두드린 당신, 그리고 스스로 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온 당신,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사제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사제와 함께 섬겨주십시오.

사제와 대화해 주세요.

사제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세요.

 

사제도 “인간, 사람”입니다.

사제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이 필요합니다.

 

출처; CTTO Catholic Tradition & Evangelization(가톨릭 전통과 복음화) 김미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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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우리는 그들의 믿음과 희생, 봉헌을 기억한다 (대구 카리타스 신년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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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202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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