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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bishop/Bishop

교구장 말씀
삶의 목표와 의미를 일깨워준 주님의 부활 (주님부활대축일 파스카성야 미사 강론)
  •   2026-04-13
  •   810

주님부활대축일 파스카성야

 

2026. 04. 04. 주교좌 계산성당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자비가 여러분들에게 가득하길 빕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 있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에 하루빨리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찾아오도록 부활하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마태 28,1-10)을 보면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더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러져 있었고, 한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5-6)

이 천사의 말처럼 오늘 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밤을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라고 부릅니다. ‘성야’라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거룩한 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 전례 규범은 파스카 성야 전례를 ‘밤중에 거행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파스카 성야는 ‘모든 거룩한 밤샘 전례의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이 미사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사는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하느님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이 없다면 파스카 성야도 그저 평범한 밤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오늘 밤 우리에게 파스카의 문,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밤을 기뻐하며 알렐루야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까?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참으로 험난하고 만만치가 않습니다. 온갖 사건 사고들이 터지고, 폭력과 테러와 전쟁이 터지고, 온갖 유혹과 범죄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믿고 사는 사람으로서 흔들리지 않는 영을 지니고 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의 나치 수용소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빅터 플랭클 박사(1905-1997)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결코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 영의 자유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고, 태도를 선택할 영의 자유다.”

빅터 플랭클 박사가 죽음의 수용소에서 발견한 진리는, 사람이 삶의 의미를 찾으면, 삶의 희망을 잃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 삶의 희망은 바로 주님의 부활로써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누구죠? 오늘 복음(마태 28,1-10)은 여자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들이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습니까? 이른 새벽에 무덤에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마태28,1-10)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28,1)

그 여자들이 이른 새벽에 무덤에 왜 갔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나, 안 하셨나?’ 확인하러 갔을까요?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신을 닦아드리고 기름을 발라 드리기 위해서 갔던 것입니다. 얼마나 그녀들의 사랑이 깊고 용기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영화 ‘왕사남’, 즉 ‘왕과 사는 남자’ 보셨나요? 영화 마지막에 단종 임금이 죽어서 시신을 강에 버리잖아요. 대역죄로 죽었기 때문에 누구도 시신을 거두거나 장사 지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도 대역죄를 물을 수 있는 그 시대에 ‘엄홍도’라는 사람이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화 때문에 엄홍도라는 사람이 널리 알려져서 단종 임금이 마지막을 보냈던 영월 청령포뿐만 아니라 엄홍도가 묻힌 무덤(군위에 있다고 한다)까지 사람들이 요즘 많이 찾아간다고 합니다.

지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마태 26,14-27,66)을 보면, 마지막 부분에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그 당시로서는 대역죄인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아 그냥 두는 것이 보통인데,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거둘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얻어서 자신이 장차 쓰기 위해 마련해 놓았던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셨던 것입니다. 왕사남의 엄홍도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영화 ‘벤허’를 보셨나요? 1959년에 제작된 영화인데, 그해 아카데미상에서 무려 11개 부문을 수상했었습니다. 벤허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나병에 걸린 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리고 찾아갔는데, 그때 마침 예수님께서는 피땀이 범벅이 되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넘어지셨는데 병사들은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때 벤허가 나서서 바가지에 물을 떠서, 병사의 발길질에 차이면서도 예수님 입에 대어줍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이런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제6처가 무엇입니까?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입니다. 베로니카 이야기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전승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험악한 분위기에서도 굴하지 않는, 베로니카와 같은 그런 용기가 이 시대에도 필요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나,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나, 벤허나 베로니카 같은 그런 믿음과 사랑이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마태 28,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기뻐하며 주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2026. 04. 04. 주교좌 계산성당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자비가 여러분들에게 가득하길 빕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 있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에 하루빨리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찾아오도록 부활하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마태 28,1-10)을 보면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더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러져 있었고, 한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는 줄을 나는 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5-6)

이 천사의 말처럼 오늘 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밤을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라고 부릅니다. ‘성야’라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진 거룩한 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 전례 규범은 파스카 성야 전례를 ‘밤중에 거행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파스카 성야는 ‘모든 거룩한 밤샘 전례의 어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이 미사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사는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주님의 부활은 우리가 하느님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이 없다면 파스카 성야도 그저 평범한 밤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오늘 밤 우리에게 파스카의 문,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밤을 기뻐하며 알렐루야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까?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참으로 험난하고 만만치가 않습니다. 온갖 사건 사고들이 터지고, 폭력과 테러와 전쟁이 터지고, 온갖 유혹과 범죄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믿고 사는 사람으로서 흔들리지 않는 영을 지니고 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의 나치 수용소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빅터 플랭클 박사(1905-1997)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결코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 영의 자유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만의 길을 선택하고, 태도를 선택할 영의 자유다.”

빅터 플랭클 박사가 죽음의 수용소에서 발견한 진리는, 사람이 삶의 의미를 찾으면, 삶의 희망을 잃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 삶의 희망은 바로 주님의 부활로써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누구죠? 오늘 복음(마태 28,1-10)은 여자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들이 어떻게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습니까? 이른 새벽에 무덤에 달려갔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마태28,1-10)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다.”(28,1)

그 여자들이 이른 새벽에 무덤에 왜 갔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나, 안 하셨나?’ 확인하러 갔을까요?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신을 닦아드리고 기름을 발라 드리기 위해서 갔던 것입니다. 얼마나 그녀들의 사랑이 깊고 용기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영화 ‘왕사남’, 즉 ‘왕과 사는 남자’ 보셨나요? 영화 마지막에 단종 임금이 죽어서 시신을 강에 버리잖아요. 대역죄로 죽었기 때문에 누구도 시신을 거두거나 장사 지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도 대역죄를 물을 수 있는 그 시대에 ‘엄홍도’라는 사람이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화 때문에 엄홍도라는 사람이 널리 알려져서 단종 임금이 마지막을 보냈던 영월 청령포뿐만 아니라 엄홍도가 묻힌 무덤(군위에 있다고 한다)까지 사람들이 요즘 많이 찾아간다고 합니다.

지난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마태 26,14-27,66)을 보면, 마지막 부분에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그 당시로서는 대역죄인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아 그냥 두는 것이 보통인데,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거둘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얻어서 자신이 장차 쓰기 위해 마련해 놓았던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셨던 것입니다. 왕사남의 엄홍도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영화 ‘벤허’를 보셨나요? 1959년에 제작된 영화인데, 그해 아카데미상에서 무려 11개 부문을 수상했었습니다. 벤허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나병에 걸린 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리고 찾아갔는데, 그때 마침 예수님께서는 피땀이 범벅이 되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넘어지셨는데 병사들은 채찍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때 벤허가 나서서 바가지에 물을 떠서, 병사의 발길질에 차이면서도 예수님 입에 대어줍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이런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제6처가 무엇입니까?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을 묵상합시다.’입니다. 베로니카 이야기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전승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험악한 분위기에서도 굴하지 않는, 베로니카와 같은 그런 용기가 이 시대에도 필요한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나, 아리마태아의 요셉이나, 벤허나 베로니카 같은 그런 믿음과 사랑이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마태 28,8)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기뻐하며 주님의 부활을 알리기 위해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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