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장/주교
Archbishop/Bi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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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원로사제 준비연수 미사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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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사제 준비연수 미사
2026. 05. 28.(목), 엠마오 연수원
오늘 복음(마르코 10,46-52)은 예수님께서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사람을 치유해 주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제 미사의 복음도 같은 마르코 복음 10장이었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 지도자들에게 넘겨져서 죽게 될 것이라는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아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께 자신들의 자리를 청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서 타이릅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2-43)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제 서품 미사 때 자주 봉독되는 복음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 이어진 부분입니다. 통상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 예리코를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예리코를 떠나실 때,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사람이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시자 사람들이 그에게 “용기를 내어라.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까이 온 바르티매오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며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르티매오의 그 끈질긴 신앙, 끊임없이 다가가는 용기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나 군중이었다면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사람이 자꾸만 예수님을 불러대니 그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제지하는 사람이 우리일 수 있고, 바르티매오에게 찾아와 ‘용기를 내게. 예수님께서 부르시네.’하고 살갑게 말하며 격려하는 사람이 우리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청도 거절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성경에서 자주 봅니다. 어떤 사람이 성사를 청하면, “지금요? 나중에 오세요!” 하지 않고, “예, 그래요. 자매님. 잘 생각했어요.” 하면서 언제나 친절하게 성사를 베푸는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서 보고 싶어 하시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오늘날 현재 우리는 어떤 사람, 어떤 모습의 사목자일까요? 우리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사목 일선에서 은퇴할 사람들입니다. 사목 일선에 있든, 은퇴를 하든 사제로 사는 모습은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마르 10,52)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걸어왔던 그 길이 평탄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름 험난한 길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총과 우리의 노력으로 오늘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에 하느님 나라에 갈 때까지 바르티매오와 같은 끈질긴 믿음과 신뢰와 용기와 희망으로 그 길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걸어가십니다. 2026. 05. 28.(목), 엠마오 연수원
오늘 복음(마르코 10,46-52)은 예수님께서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사람을 치유해 주시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제 미사의 복음도 같은 마르코 복음 10장이었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유대 지도자들에게 넘겨져서 죽게 될 것이라는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아무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께 자신들의 자리를 청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서 타이릅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2-43)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제 서품 미사 때 자주 봉독되는 복음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에 이어진 부분입니다. 통상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 예리코를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예리코를 떠나실 때,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사람이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쳤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시자 사람들이 그에게 “용기를 내어라.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까이 온 바르티매오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며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르티매오의 그 끈질긴 신앙, 끊임없이 다가가는 용기 같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나 군중이었다면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사람이 자꾸만 예수님을 불러대니 그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제지하는 사람이 우리일 수 있고, 바르티매오에게 찾아와 ‘용기를 내게. 예수님께서 부르시네.’하고 살갑게 말하며 격려하는 사람이 우리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청도 거절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성경에서 자주 봅니다. 어떤 사람이 성사를 청하면, “지금요? 나중에 오세요!” 하지 않고, “예, 그래요. 자매님. 잘 생각했어요.” 하면서 언제나 친절하게 성사를 베푸는 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서 보고 싶어 하시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오늘날 현재 우리는 어떤 사람, 어떤 모습의 사목자일까요? 우리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사목 일선에서 은퇴할 사람들입니다. 사목 일선에 있든, 은퇴를 하든 사제로 사는 모습은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마르 10,52)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걸어왔던 그 길이 평탄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나름 험난한 길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총과 우리의 노력으로 오늘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에 하느님 나라에 갈 때까지 바르티매오와 같은 끈질긴 믿음과 신뢰와 용기와 희망으로 그 길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걸어가십니다. |